평양에서 태어나 경북 예천에 정착한 억척 여성 분투기[주성하의 북에서 온 이웃]

1 day ago 10

평양에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경북 예천에서 식당과 농사, 인력사무소 대표로 든든하게 뿌리내린 김려원 씨. 평양 ‘중심 중의 중심’으로 김일성광장과 외무성이 있는 중구역 중성동에서 중앙당 간부 맏딸로 태어났다. 아무 걱정 없는 인생을 살 줄 알았지만 30대에 굶주림에 시달리다 중국에 팔려 갈 줄은 상상도 못 했다.어느덧 60대가 돼 뿌리내린 곳은 경북 예천군 풍양면이다. 식당도 하고, 농사도 짓고, 인력사무소도 하면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살고 있다. 경작하는 논밭만 100마지기(약 6만6000㎡·2만 평). 벼와 콩, 참깨, 감자, 양파 등 다양하게 재배하고 있다.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소원이 있다. 통일이 되면 소유한 차량 6대에 직접 생산한 쌀을 가득 싣고 평양에 가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꿈이다. 그것이 굶다가 세상을 떠나 관도 없이 묻힌 어머니, 역시 아사한 오빠, 그리고 탈북 후 생사를 모르지만 죽었을 확률이 큰 남동생 영혼을 조금이나마 달래 줄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그런 소원이 남아 있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주저앉을 수가 없다. 휴대전화는 오늘도 쉼 없이 울린다. “네, 김려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김려원 씨가 지난해 예천에서 노인 주택 보수 사업을 진행하다 찍은 사진. 그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있다. ● 교사가 정한 47명의 운명김려원 씨는 1962년에 태어났다. 1978년, 16세에 노동자가 되기까지는 그나마 북한 ‘황금기’라 배고픈 기억이 없었다.함흥 출신 부친은 건설 기술자로 일하다가 중앙당 간부로 발탁돼 평양에 올라왔다. 중앙당 공급은 좋았다. 식구 수에 맞게 지급된 기름과 사탕이 남아 주변에 나눠 줄 정도였다.김 씨는 ‘평양성 중심’이라는 뜻인 중성동 중앙당 아파트에서 태어나 보통문인민학교와 창전중학교를 다녔다. 평양 중심에 살다 보니 집단체조나 김일성이 참가하는 ‘1호 행사’에 자주 동원됐지만,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살았기에 불만은 없었다.학교 다닐 때 꿈은 요리사가 되는 것이었다. 매년 한두 달씩 지방으로 농촌 동원을 나가면 학급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그의 몫이었다.하지만 그의 꿈은 중학교 5학년 졸업반 때인 1978년 무참히 깨졌다. 당시까진 북한 의무 고등교육이 5학년까지였다. 그의 학년은 한 반이 50명 안팎인 8개 반이 4개 반씩 남자 반과 여자 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어느 날 한 반을 노동 현장에 ‘집단 진출’시키라는 당의 지시가 하달되자 김 씨의...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