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과이익' 녹서 추진
김영훈 "독일 모델 벤치마크해 각계각층 사회적 대화로 확대"
당초 노동시장 격차 해소 논의
정치권 일각선 농민 환원까지
찬 "이례적 호황, 산업 투자를"
반 "정부 개입하면 시장 왜곡"
정부가 대기업 초과이윤 배분 논의를 다시 띄우기로 하면서 '반도체 호황의 과실'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눌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당초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제기한 '사회연대임금' 담론은 대기업과 하청 노동자 간 임금 격차 해소에 방점이 찍혔으나, 최근 청와대의 '국민배당금' 구상과 정치권의 '농어촌 환원론'이 가세하면서 담론의 전선이 국가 재정 및 산업 정책 전반으로 확대하는 양상이다.
28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반도체 호황과 관련해 "대한민국 경제의 좌표가 다시 그려질지도 모르는 순간"이라며 "한 세대에 한 번, 어쩌면 한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역사적 순간"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지금 대한민국 공론장이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반도체"라며 "특별이익을 주주와 노동자 간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고 물었다. 특히 그는 "반도체 호황으로 생긴 돈이 수도권 부동산으로 몰릴 경우 산업에서는 승리했지만 사회에서는 실패하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고 염려했다.
◆ "노동시장 격차 크다"
초과이윤 배분 논의의 출발점은 '노동시장 격차'다.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에서 보듯 원청 대기업의 호황은 정규직 성과급으로 이어지지만, 협력업체와 하청 노동자에게는 충분히 흘러가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다. 김 장관도 정부가 기업 이윤을 강제로 빼앗아 나눠 주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간 격차 확대를 사회적 대화로 풀자는 취지라고 설명해왔다.
정부가 검토 중인 공론화 방식은 독일의 '녹서(Green Paper)·백서(White Paper)' 모델이다. 정부가 먼저 정책적 화두를 담은 녹서를 발행해 사회적 질문을 던지고, 각계각층의 폭넓은 의견 수렴과 합의를 거쳐 최종 정책 방향을 백서로 확정하는 '상향식 사회적 대화 시스템'이다.
독일 연방노동사회부는 2015년 '노동 4.0' 녹서를 내고 디지털 전환이 노동시장에 던지는 질문을 먼저 공개했다. 여기에는 플랫폼 노동, 노동시간 유연화, 직업훈련, 사회보장, 노사 관계 등 디지털 시대 노동의 쟁점이 담겼다.
이후 독일 정부는 노사 단체, 기업, 전문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대화 절차를 2016년 말까지 이어갔다. 온라인 의견 수렴, 전문가 회의, 공개 토론 등을 통해 녹서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사회적 답을 모았다. 그 결과는 이듬해 백서로 정리됐다. 백서는 단순 보고서가 아니라 공론화 결과를 토대로 정부가 향후 노동시장 정책의 방향과 과제를 제시한 문서였다.
정부가 고민하는 초과이윤 배분 논의는 노동시장 격차 해소를 넘어 초과세수 활용과 국민 배분 문제로 번지고 있다. 김 실장은 앞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인프라스트럭처 산업의 과실이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며 초과세수를 국민 전체가 공유하는 국민배당금 구상을 제기한 바 있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은 기업 초과이윤을 직접 나누자는 취지가 아니라 초과세수 활용 문제라며 선을 그었지만, 논의 범위는 국민 전체 배분 문제로 확장된 상태다.
◆ 백가쟁명식 이익공유안
정치권에서는 국부펀드 방식도 거론된다. 지난 25일 국회에서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반도체 산업 초과세수 공유방안 모색 토론회'를 열고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기금화해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초과이윤 배분 논의가 시장 기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반면, 예외적 호황기에 발생한 수익 일부를 산업 생태계 강화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초과이윤이라는 말 자체가 기준이 애매하다"며 "평소보다 많이 벌었다고 해서 그것을 초과이윤이라고 볼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민간이 얻은 이윤에 대해 정부가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시장 기능에 대한 간섭"이라며 "기업이 자율적으로 사회적 기여를 하는 것은 별개지만 정부가 주도하면 국내외 투자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 교수는 "매우 예외적인 초과수익에 대해서는 기준을 정해 일부를 산업에 재투자하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기업은 자기 회사의 혁신과 재투자는 잘하지만 산업 생태계 전체를 고려하기는 어렵다"며 "반도체 산업의 인력 양성, 교육훈련, 하도급 지원 등에 쓰는 목적세 방식이라면 산업 체질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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