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갓 쓰고 검은 두루마기를 두른 한국의 저승사자가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가운데 ‘크리처(괴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도 “한국의 괴수를 좋아한다”고 엄지를 들어 올렸다.
델 토로 감독은 19일 오전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리고 있는 부산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진행된 영화 ‘프랑켄슈타인’ 기자회견에서 ‘한국 괴수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괴수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정말 돕고 싶고, 혹여 제가 미친다면 직접 만들 수도 있다”며 이렇게 답했다. 이날 그는 영화제 측이 선물한 <한국 괴물 백과> 책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책”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영화제를 계기로 한국을 처음 찾은 가운데 한국 전통 괴수들도 눈 여겨 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델 토로 감독은 섬뜩한 괴수를 앞세운 호러 판타지 연출로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거장으로 불린다. ‘미믹’(1997), ‘헬보이’(2004), ‘판의 미로’(2006) 등 지금껏 선보인 괴수들이 다양하다. 마치 현실과 환상을 교묘하게 뒤섞은 것처럼 괴수들이 어설프지 않고 극의 서사와 잘 호흡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BIFF 갈라프레젠테이션 섹션에서 선보이는 ‘프랑켄슈타인’ 역시 지금껏 스크린에서 묘사된 흉측한 모습이 아닌 육체적으로 완성된 아름다움 사이에 신생아 같은 순수함이 깃든 모습으로 호평 받았다. 사람과 괴물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존재처럼 그렸다는 것이다.
델 토로 감독의 괴수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그는 “미디어는 상업적으로 사람들이 두려움 없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실 삶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며 “괴수는 이런 인간의 어두운 면을 대변하면서도 비범함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인간의) 완벽하고 밝은 쪽보다는 불완전하고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춘다”면서 “괴수는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상징이 될 수 있고, 우화라는 틀에서 관객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델 토로 감독은 한국 괴수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직 한국 괴수에 깊게 빠져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원작인 영화 ‘프랑켄슈타인’ 역시 젊은 시절 소설을 읽고 난 후 영화로 만들어보겠다며 깊게 탐구한 결과 60대에 이르러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델 토로 감독은 이날 한국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드러냈다. 특히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며 ‘봉박’으로 묶이는 봉준호·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크게 칭찬했다. 그는 “장르 영화는 그 사회의 문화가 가진 프리즘을 비추며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한국영화는 다른 어떤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접근과 힘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을 보면 허술한 형사의 허술한 수사나 ‘괴물’에 나오는 가족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며 “박찬욱 감독은 부조리와 혼돈, 추악함을 한 영화에 버무려 존재론적으로 어둡지만 동시에 낭만적인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부산=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