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는 그야말로 낭떠러지 끝에 서 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이후, 극장가는 회복세를 맞는 듯하더니 또다시 침체 국면에 빠져 있다. 결과적으로 '최악의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실제로 업계 안팎에선 "이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는 절망감마저 감돈다.
온라인동영상 서비스(OTT)의 확산은 극장 산업에 결정타를 날렸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집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관객의 발걸음은 극장으로 향하지 않게 됐다. 1만4000원을 내고 영화 1편을 보기보다는, 원하는 시간에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OTT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투자·배급 구조 전반을 흔들었다. 관객 수 감소로 인한 수익성 악화는 투자자들의 이탈로 이어졌고, 대형 배급사들조차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게 했고 올해 영화는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가 됐다.
신작의 부재. 관객들은 극장에 갈 이유조차 찾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콘텐츠, 자본, 관객 삼박자가 모두 불안정해진 지금, '생존'이 최대의 과제가 된 영화 산업은 다시 한번 관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2025년 상반기 전체 개봉작 중 가장 흥행한 영화는 4월 개봉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강하늘, 유해진 주연의 '야당'으로, 약 337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청불 등급 영화 중 6년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지만, 영화계 전반을 봤을 땐 웃을 일은 아니었다.
올해 초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미키17'은 약 301만명,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역시 322만명에 그치며 흥행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두 작품은 현재까지의 흥행 순위 2위, 3위에 각각 올라 있는 상황이다. 300만명을 겨우 넘긴 작품들이 상반기 극장가를 이끌고 있다는 점은 현 영화 시장의 침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만명 이상을 기록한 영화는 '히트맨2'(254만명)와 '승부'(214만명) 단 두 편뿐이며, 100만명대 관객을 기록한 영화도 불과 네 편에 불과하다.
한 영화 관계자는 현재 극장가 분위기에 대해 "요즘은 영화가 특별히 큰 기대를 모으지 않는 이상, 관객 수 평균 100만 안팎, 작품이 꽤 잘 되더라도 150만 명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금의 분위기를 보면 코로나19로 극장 관객이 급감했던 2020년과 2021년이 떠오를 만큼, 업계 전반이 매우 침체되어 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현재 박스오피스에서는 강형철 감독의 코미디 액션 영화 '하이파이브'가 누적 159만명을 모으며 분전 중이지만, 실 관람객 평점과 달리 폭발적인 흥행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번 달엔 '28년 후', '엘리오', '드래곤 길들이기' 등 외화 기대작들이 경쟁을 벌인다.
이런 가운데 영화계는 여름 대목을 기점으로 분위기 반전을 노린다. 이른바 '비밀병기'의 등장이다.
7월엔 300억 대작 '전지적 독자 시점'이 포문을 연다. 동명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로, 소설의 유일한 독자였던 '김독자'가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안효섭이 김독자 역을, 이민호가 죽음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회귀 능력자 유중혁 역을 맡았다. '신과 함께'를 제작한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와 '더 테러 라이브' 김병우 감독이 힘을 합쳐 완성도를 높였다.
하지만 개봉 전부터 원작 각색 논란에 휩싸였다. 원작에서 칼을 무기로 사용하던 캐릭터의 무기를 총으로 변경하는 등 설정 일부가 수정됐다. 김병우 감독은 "원작 팬들의 걱정은 이해한다. 영화를 보면 왜 그렇게 각색했는지 납득하실 것"이라 밝혔다.
또 하나의 기대작은 조정석 주연의 '좀비딸'이다. 네이버 인기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을 원작으로 하며, 좀비가 된 딸을 지키기 위해 아빠가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다룬 휴먼 좀비 코미디 영화다.
조정석은 극 중 '정환' 역을 맡아 유쾌함과 부성애를 동시에 선보인다. 그는 2019년 '엑시트', 2024년 '파일럿' 등 텐트폴 흥행작의 주역으로 활약한 바 있어, 이번 작품에도 기대가 크다. 여기에 이정은이 흥과 정이 넘치는 할머니 '밤순'으로 출연해 손녀를 지키는 따뜻한 이야기를 더한다. 연출은 단편 '운수 오진 날'로 주목받은 필감성 감독이 맡았다.
한 영화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계절에 따른 관객 수 변화가 점차 희미해지면서 전통적인 성수기와 비수기의 경계가 많이 무너졌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방학과 휴가철은 여전히 극장가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최대 대목"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이런 시기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관객의 기대감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최소 500만 관객 이상을 노릴 수 있는 대박 작품이 필요하다"며 "지금의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킬 흥행작의 등장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