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주춧돌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기고/김주원]

5 days ago 13

김주원 한글학회장 한글은 우리말의 소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만들어 낸 독창적인 음소문자로 간결성과 정확성, 과학성을 두루 갖춘 문자로 평가받아 왔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체계적·규칙적 구조, 그리고 최근 한국어 한글을 비롯한 K문화의 세계적 확산은 한글의 또 다른 우수성을 잘 보여 준다.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자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는 올해, 이제는 한글을 ‘우수한 문자’로 칭송하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사회와 경제 발전에 어떻게 이바지했는지 그 실질적 가치에 주목하고자 한다. 1926년에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에서는 훈민정음 반포 480돌을 맞이하여 ‘가갸날’을 제정하고 기념식을 열어 한글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다졌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한글은 단순한 문자를 넘어 민족 독립의 상징이었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국민적 합의를 거쳐 3대 어문 규범이라고 할 수 있는 ‘한글맞춤법 통일안’(1933년), ‘표준어 제정’(1936년), ‘외래어 표기법’(1940년)을 제정해 내었다. 1945년 광복 직후, 일제의 한국어와 한글 말살 정책으로 인해 성인의 무려 78%가 우리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 상태였다. 이후 1963년까지도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를 밑도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으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압축적 경제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다. 무엇이 이토록 거대한 반전을 만들었을까? 외적 요인 외에 내적으로는 뜨거운 교육열과 그로 인한 폭발적인 인적 자원의 증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54년부터 1959년까지 이어진 ‘의무교육 6개년 계획’의 성과로 1959년 학령 아동의 95.3%가 학교에 다녔으며, 1960년대에는 ‘2부제 수업’과 ‘콩나물시루 교실’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든 발전에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던 근본적 과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대다수 국민이 문맹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단 10여 년 만인 1958년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문맹률은 4.1%로 급감했다. 이 기적적인 수치를 단순히 교육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국민의 전반적인 ‘말글 이해 능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결정적 요인은 다름 아닌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한글’의 압도적인 효율성에 있었다. 광복 후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기 속에서도 이미 만들어 둔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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