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상무장관 ‘연쇄 회동’에도
美 만족할만한 랜딩존 못찾아
내주 정부 대미 채널 풀 가동
협상타결 위한 전력투구 나서
李대통령, 주말 중 협상전력 전검
‘협상 레드라인’ 영역 풀고
조선 협력 등 美 수요 적극 대응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등
한미 안보 당국 간 협의도 주목
한국이 미국의 관세 협상 우선 순위에서 밀리자 대통령실과 정부는 상호관세 유예시한 이전에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미국 측 협상단이 28~29일 예정된 미·중 3차 관세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31일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조선업 협력을 최대한 동력으로 활용하면서 그간 ‘레드라인(협상 불가 영역)’으로 꼽혀왔던 소고기와 쌀 시장 개방도 일부 양보하며 협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27일 대통령실과 정부에 따르면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현 외교부 장관은 각각 금주 중 미국 측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미국 현지에서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상호관세 발효 하루 전인 오는 31일 만남이 유력하다. 물리적인 시간 부족에도 불구하고 관세 협상 ‘버저비터(경기 종료와 동시에 이뤄진 득점)’를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지난 24일(현지시간)에 이어 25일에도 늦은 밤까지 협상을 이어갔다. 양국 상무장관 간 협상은 뉴욕 소재 러트닉 장관의 자택에서까지 진행됐다.
김 장관은 25일(한국시간)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통상대책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대미 투자와 소고기, 쌀을 포함한 농축산물 이슈 등 쟁점 분야에서 종전보다 진전된 안을 미국 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우리 측 수정 제안에 미국 측은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해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협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 양국이 ‘랜딩존(합의점)’을 찾는 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미국은 일본이 약속한 대미투자 금액(5500억달러)에 버금가는 눈에 띄는 협상카드를 한국에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는 국익 최우선을 고려한 협상 원칙을 천명한 상태다.
미국의 요구사항이 과도할 경우 일단 25% 상호관세 부과를 받아들이고, 다음달까지 협상을 이어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경우 국내 수출 기업들이 당분간 경쟁국 대비 불리한 무역 환경에 직면해야 한다. 한국의 최대 수출 경쟁국인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합의를 통해 관세율을 한국보다 10%포인트 낮춘 상태다. 여기에 더해 유럽연합(EU)과 중국까지 미국과 합의에 성공한다면 글로벌 주요 수출국 중 한국만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는 상황이 된다.
이미 미국발 관세 부과 여파는 수출 지표에 고스란히 영향이 반영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622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7% 감소했다. 반기 기준 대미 수출액이 전년동 기 대비 줄어든 것은 2020년 상반기 이후 5년 만이다. 특히 미국이 25%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한 승용차의 경우 상반기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0.8% 줄어들면서 전체 수출품목 중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관련 한미 안보 당국 간 협의가 진행되고 있어 주목된다. 미국 국무부는 25일(현지시간) 한국 언론의 질의에 “70년 이상 유지해온 이(한미) 동맹은 변화하는 지역 안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한반도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역할과 책임을 재조정(rebalancing)하는 것을 목표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한국과 미국 양측이 지역 안보환경의 변화 속에서 한미동맹의 미래 방향에 대한 공동 이해를 바탕으로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지역 안보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동맹 역시 이에 맞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미 양측의 공통된 인식이라는 것이다.
한미 외교당국은 주한미군 재조정 등의 민감성을 고려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왔지만, 미 국무부는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한국 측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의 의지가 분명하고, 실제 한국 정부와 논의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이 같은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은 현재 진행 중인 관세협상과는 별도 채널로 논의되는 사안으로 관세 협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휴일인 27일 공식 일정을 잡지 않은 채 참모들로부터 협상 진행 추이를 보고받고 막바지 대응 전략을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주말에도 회의를 열어 정책·안보 라인이 머리를 맞대고 미국 현지에서 전해지는 정부의 협상 상황을 공유하면서 전략 수립에 나서고 있다. 안보·전략산업·구매·투자 등 여러 단위별 협상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분야별 협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묶어내 관세율 인하라는 최종 목표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