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한·미 통상당국이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의제 조율과 함께 한달 전 맺은 관세협상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 때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내용을 한국 측에 추가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비책도 고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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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에너지부 회의실에서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
24일 정부에 따르면 한국 외교 및 산업·통상 수장은 일찌감치 미국을 찾아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고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회동한 것을 시작으로 22일엔 조현 외교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각각 은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과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을 만났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첫 만남인 만큼 양국 모두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한국은 지난달 맺은 한미 관세협상을 토대로 한·미간 경제·통상 분야를 안정화하는 동시에 조선·원전 등 분야의 한·미 산업협력 확대해 ‘윈-윈’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번 방미 기간 중 한·미 조선협력 계획 마스가 프로젝트 거점이 될 한화오션 필리조선소도 찾을 예정이다. 또 양국 정상이 참여하는 양국 주요 경제인 만남의 자리도 예정돼 있다.
원자력도 한국 측이 관심을 두고 협력을 진전해야 할 분야로 꼽힌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올 1월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와의 지적재산권 분쟁 합의를 토대로 6일 26조원 규모 체코 원전을 수주했으나, 이후 유럽·미국 진출 불가 조항 등이 우리에게 너무 불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수원 등은 WEC와의 조인트벤처(JV) 설립 등을 통한 반전을 모색 중이다.
정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용후핵연료의 원활한 처분을 위한 재처리를 목표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의제도 꺼내 들 계획으로 알려졌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2일 “원자력, 조선,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한·미 동맹의 새 협력 분야도 개척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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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올린 이날 한·미 관세협상 타결 기념촬영 사진. (사진=백악관 엑스 계정) |
그러나 미국은 이 같은 한국 측 바람을 지렛대 삼아 앞선 합의에서 약속한 3500억달러(약 485조원) 규모의 대미투자 약속을 구체화하는 것은 물론 앞선 협의 때 포함되지 않았던 디지털·농축산 분야의 각종 비관세장벽 해소 요구를 해올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부가 인텔 지분 10%를 확보하는 가운데 반도체 보조금을 이유로 삼성전자 등의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 역시 가능성을 떠나 한국 측의 투자 확대를 요청하는 목적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결국은 삼성전자 등에 반도체 투자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며 “기존 3500억달러 투자 약속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려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양국은 지난달 협상을 타결했으나 이를 아직 문서화하지는 않은 만큼 미국 측이 한국의 투자약속을 빌미로 추가적인 요구를 해 올 가능성도 있다. 당시 약속했던 자동차 관세 인하(25→15%)도 아직 시행 시점과 조건은 미정이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앞선 구두 합의를 문서화했는데, 자동차 관세 인하는 EU가 먼저 자국 시장 개방 약속 입법안을 마련한 후 시행한다는 단서가 달린 만큼, 우리 측에게도 여러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전례상 정상회담 등에 사전에 조율했던 의제에 없던 돌발성 제안을 하는 경우가 많기에 당국은 긴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앞선 관세협상 과정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한국 방위비 증액이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확대 등이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
구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동맹국을 대상으로 방위비 증액 요구를 해 온 만큼 (현재 GDP의 2.3% 수준인) 방위비를 (나토와 비슷한) 3.5% 수준으로 늘리라는 얘기는 계속 나올 수 있다”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도 거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