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너도나도 가입
중증외 지급조건 까다로워
보험금 수령 700억원일 때
해약환급금 5배인 4천억원
불완전 판매 논란도 제기돼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치매 관련 보험 상품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지고 있지만 정작 보험금을 수령한 경우보다 해약하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가입해보니 보험금 수령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걸 알고 해지한 고객이 계속 늘고 있는 데다 일부 설계사가 치매보험을 저축성 상품으로 소개하며 불완전판매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다. 치매가 고령화 시대를 맞아 본격적인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실효성 있는 보험을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매극복의 날인 21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국내 전체 생명·손해보험사가 올해 상반기 거둬들인 치매·장기간병 보험료는 1조7133억원에 달한다. 전년 동기 1조6260억원에 비해 1000억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알츠하이머를 진단받았을 때 간병비와 생활비 부담을 줄일 목적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이 증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치매 관련 보험이 여전히 제대로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치매 진단 후 지급된 보험금보다 해약으로 인한 환급금이 5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올 상반기 치매·장기간병 상품에서 나간 보험금은 761억원인 데 비해 해약환급금은 4192억원에 달한다. 특히 보험금 수령이 2년 새 약 50억원 불어나는 동안 해약환급금은 그 10배에 달하는 600억원가량 신장했다.
위험에 대비하는 보장성 보험에서 해약환급금이 보험금보다 많이 지출되는 건 드물다. 실제 질병보험과 상해보험, 어린이보험 등은 보험금이 해약환급금보다 각각 2~3배 더 많다.
유독 치매보험에서 해약이 많은 건 수령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수 치매보험은 거동이 어렵고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한 중증 치매 환자에게만 보험금을 지급한다. 상품별 보험금 지급 기준은 치매임상평가척도(CDR)의 중증 치매 기준인 3등급을 넘는 경우가 많은데, CDR 3등급은 취미 생활을 전혀 하지 않고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전화기 사용이나 약 챙겨먹기 등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CDR 1~2등급 환자는 보험금을 받기 어렵다. 막상 보험금을 받으려고 보니 수령 조건에 미달해 해약한 소비자가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의료계에서는 치매 환자 중 CDR 2등급 이하인 환자가 80% 이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일부 설계사가 치매보험의 환급률을 강조하며 판매해 일부 소비자는 해당 상품을 저축성 보험으로 오인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금융당국은 단기납 종신보험이 보장성 상품임에도 저축성으로 포장돼 판매되는 관행에 제동을 건 바 있는데, 치매보험에서도 환급률이 홍보 포인트로 활용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몇몇 상품은 10년을 납입한 후 환급받을 수 있는 비율이 113~119%에 달하는데, 과거 판매했던 보험의 환급률이 100%를 상회하는 시기가 속속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에서는 고령화에 따라 국내 치매 환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치매보험 상품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에서 치매 환자는 내년 100만명을 넘어서고, 2044년엔 200만명을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양한 치매보험이 치매 진단과 치료에 관한 보장을 제공하지 않으면 개별 가계 부담이 급속도로 커질 수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관리 비용은 2010년 1851만원에서 2023년 2700만원으로 늘어났다. 주요 보험사는 경증 치매에도 적용 가능한 보장을 추가하며 수요에 대응하는 모양새다.
치매 피해 지방자치단체 보험의 도입 필요성도 제기된다. 인지 장애를 지닌 사람이 타인을 다치게 하거나 재산상 손해를 입혔을 때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주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우 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치매 환자에게 부양 가족이 없거나 배상 능력이 부족할 경우 피해자가 구제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등 손해배상책임의 불안정성이 상존한다”며 “일본은 총 79개 지자체에서 치매 피해 지자체 보험과 유사한 형태의 보험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