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에 이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긴박해지는 국제 정세 속 각국의 손익 계산서가 복잡해진 가운데, 각국이 '신중 모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23일 NHK와 교도통신 등 일본 현지 매체는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시바 총리가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격으로 중동 정세가 긴박해진 데 따라 회의 참석을 취소하고 나토 정상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방문을 보류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20일 일본 정부는 이시바 총리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24~26일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본은 2022년 6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총리를 시작으로 매년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왔다.
일본 정부는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이 대신 참석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HK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불참할 가능성이 있고 역시 초청을 받은 이재명 한국 대통령도 불참하기로 한 상황 등을 감안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날 대통령실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이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불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그러나 여러 가지 국내 현안과 중동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도저히 직접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처음으로 주재한 대통령실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중동 상황이 매우 위급하다"며 "대통령실을 비롯한 전 부처가 비상대응체계를 갖춰 비상 대응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급등한 국제유가를 언급하며 "유가 인상과 연동돼 물가 불안이 우려된다"며 "합당한 대책을 충분히 강구하라"고 당부했다.
나토는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4국(IP4)을 매년 초청해 왔다. 한국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3년 연속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에 참석하지 않거나 참석하더라도 통상 문제가 주요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이 대통령이 국내를 비우고 회의에 참석할 실익이 적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정부가 지난 주요 7개국(G7) 초청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사태 때문에 급하게 떠났다고는 하지만, 우리로서는 대통령 취임 후 첫 국제 외교 무대에 나갔는데 미국이 한국과 별도의 정상회담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고 만약 이번에도 나토에 참석했는데 그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국격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정부가 신중 모드로 일단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일본도 미국과 여러 통상 협상을 앞두고 있지만 원하는 게 관철되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외교적인 실망감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나토 초대에 불참한다는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과의 외교·군사적 협력 관계가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낸다"면서도 "그간 각국의 정상들이 낸 메시지를 놓고 볼 때는 한미일 공조가 약화될 가능성은 현재 없어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서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의 참석 여부 등 모든 게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만 먼저 불참을 통보한 것은 아쉽다"며 "유연하게 가져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고 전했다.
미뤄지는 이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이 언제 열릴지를 두고 이목이 쏠린다. 당초 이달 중에는 주요 다자외교 무대를 계기로 두 정상이 첫 회동을 가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여러 외교적 변수로 무산된 바 있다.
현재 진행되는 한미 통상 협상이나 에너지·조선 등 경제 협력, 미국의 대북정책 입안 과정에 있어 정상 레벨에서 한국의 입장을 피력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개인적 '친분'이 정책에 묻어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이 대통령이 서둘러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를 형성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72일째에, 문재인 전 대통령은 52일째 미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 후 11일 만에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