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뉴욕타임스는 ‘토끼, 여우, 올빼미, 달팽이 등 동물과 함께한 회고록이 넘쳐나고 있다(A Hare, a Fox, an Owl, a Snail: Animal Memoirs Are Going Wild)’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근 영미권에서 야생동물과의 동거를 기록한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연 생태계의 파괴로 자연과의 공존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고,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서 인생에 관한 특별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영국에서도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추천하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매트 헤이그가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책’으로 꼽은 <산토끼 기르기(Raising Hare)>의 인기가 대단하다. 작년 9월 출간된 책인데도 1년 가까이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고 있고, 주요 언론이 선정하는 ‘올해의 책’ 후보에도 올랐다. 자연 세계를 향한 경외감과 존중, 그리고 인간 세계에 대한 비판적 통찰을 아름답고 시적인 언어로 표현한 데다 자유, 신뢰, 이별, 상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 외무부와 의회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며 외교 정책 전문가로 바쁘게 살아가던 클로이 돌턴에게 어느 날 산토끼 한 마리가 찾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봉쇄로 번잡한 도시를 떠나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로 왔을 때 손바닥만 한 새끼 토끼 한 마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도심 속 삶에서 후퇴하자마자 운명처럼 그의 삶에 토끼가 찾아왔고, 결국 그 토끼가 클로이의 삶을 뒤흔들었다.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은 그는 자연 세계와의 깊은 교감을 통해 회복과 치유를 경험했다.
책은 길가에 버려진 토끼를 집으로 데려갈지 말지 갈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챙기는 것조차 버거웠고, 다른 생명체를 책임지는 게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고민 끝에 토끼를 집으로 데리고 오지만, 언제든 자유를 찾아 떠나가도록 토끼와 적당한 거리를 뒀다.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고, 털을 쓰다듬지도 않았고, 한곳에 가둬두지도 않았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작은 틈까지 내줬다. 하지만 토끼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함께하는 동안 특별한 교훈을 안겨줬다. 토끼를 돌보는 일은 단순한 동물 보호를 넘어 삶의 의미를 되찾는 여정이었다.
“산토끼를 통해 나는 어떤 장소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됐습니다. 그곳을 샅샅이 탐험하는 데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을 경험했죠.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갈망하는 것과는 다른 만족감이었습니다.” “내 욕망은 단순해졌습니다. 일보다 사랑과 우정에 더 충실하고, 평범한 것에서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며, 지금 당장 내 곁에 있는 존재를 잘 돌보기로 했습니다.” 도시 생활과 치열한 경쟁에 지친 저자는 토끼와 함께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리할 수 있었고, 예기치 않게 찾아온 뜻밖의 선물로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산토끼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도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사랑하는 존재를 놓아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그것이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책은 깊이 생각하도록 돕는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