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이어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관련 집회에는 외국인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시위대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다. 해외 언론도 현장 생중계까지 하며 한국의 집회 문화를 조명했다. 참가자들이 K팝을 떼창하고 야광봉을 흔드는 모습에 K팝 콘서트를 연상시킨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 외국인들에게 서울 종로와 여의도 등 집회 현장을 구경시켜 준다는 관광 가이드들까지 등장했다. 우리 민주주의에 재난과도 같았던 계엄 사태로 빚어진 시위가 현재 진행형의 다크 투어리즘 상품이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국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올 2월까지 석 달간 입국한 해외 여행객이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계엄 충격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져 한국 여행이 저렴해지기도 했지만 탄핵 집회에 대한 호기심이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의 시위 현장이 안전하다는 소문이 SNS로 많이 퍼졌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택시 기사에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집회 장소로 가달라고 한다거나, 서울 도심 호텔에 투숙하는 외국인들이 ‘집회 뷰(view)’가 나오는 방을 선호한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계엄 사태로 인한 전례 없는 불안과 혼돈이 외국인들에게 자랑거리일 수는 없다. 탄핵 찬반으로 갈려 과격하게 목청을 높이는 국론 분열의 속살이 외국인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됐다. 법원이나 재판관들을 공격하자는 일부 시위대의 선동은 한국의 국격을 의심케 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대부분의 시위대가 헌법재판소 결정에 승복해 자진 해산했으니 망정이지 자칫 외국인들에게 싸움 구경만 시켜주는 민주주의의 흑역사를 쓸 수도 있었다.▷탄핵 집회가 자주 열린 서울 안국동과 광화문 일대는 우리 민주주의의 전시장 같은 곳이다. 북촌, 경복궁 등 유명 관광지들과 붙어 있어 외국인들의 시선이 늘 향해 있다. 이런 접근성 때문에 탄핵 집회가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긴 했지만 다행히 시위 참가자들이 평화롭게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더는 다크 투어리즘 상품으로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탄핵 집회는 뜨겁고 요란했지만, 뒤끝은 없었던 쿨한 이벤트로 기억됐으면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