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늘 낮은 곳 걸은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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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향년 88세로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점진적 개혁주의자로 평가받는다. 최초의 신대륙 출신 교황이자 예수회가 배출한 첫 교황이었다. ‘교황청의 아웃사이더’인 셈인데 동시에 아르헨티나 국적이긴 하나 이탈리아 혈통이고 가톨릭 교리에 충실한 보수주의자였다. 급진적이지 않으면서 성추문과 부패 문제로 신뢰를 잃어가던 가톨릭 교회를 재건할 적임자로 제266대 교황에 선출된 그는 12년간 12억 가톨릭 교인들과 함께 안정적인 변화를 이끌며 울림이 깊은 말을 남겼다.

▷가톨릭의 최고 이론가였던 전임 교황과 달리 그는 거리의 성직자였다. “천성이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고선 살 수 없다”던 그는 1969년 사제품을 받은 후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로 불리며 평생을 낮은 곳에 사는 이들과 함께했다. 가난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제2의 출애굽’으로 여기는 해방신학의 고장 남미 출신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좌파적 해방신학에 거리를 두면서도 “가난한 이들의 깃발은 기독교도의 것”이라고 했다.

▷76세 고령에 교황이 된 그는 우려와 달리 전 세계를 바삐 다니며 평화와 화해를 호소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도 피하지 않았다. 난민들의 떼죽음엔 “우리 모두 공범”이라고 질타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 정책에 대해선 “다리가 아닌 벽만 세우려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무슬림 과격분자의 공격을 받은 후엔 이슬람과 폭력을 동일시하지 말라며 “이슬람 폭력을 말하려면 가톨릭 폭력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고 했다. 2014년 방한 당시 세월호 리본을 단 그에게 주변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으니 떼는 게 좋겠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인간적 고통 앞에 정치적 중립은 없다.”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해선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동성애자 사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반문했다. “내가 누구라고 그들을 판단하겠나.” 동성애, 이혼, 재혼에 대해서도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하지만 동성혼 허용과 여성 사제 서품엔 반대하며 가톨릭의 핵심 가치를 고수했다. 개혁론자들은 반발했지만 “더 크고 오래가는 합의를 만들려면 점진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는 것이 교황의 지론이었다.

▷청빈했던 그는 교황에 오른 뒤엔 화려한 전용 숙소를 거부하고 소박한 사제들의 공동 숙소에서 살았다. 낡은 구두를 신고 순금 대신 철제 십자가를 목에 걸었다. 나머지는 다 헛것이라고 했다. “공작새를 보라. 앞에서 보면 아름답지만 뒤에서 보면 진면모를 알게 된다.” 마지막 부활절 강론에서 “전쟁을 끝내 달라”고 당부하고, 유언장에는 “장식 없는 무덤에 이름만 새겨 달라”고 했다. 13세기 ‘빈자의 성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딴 이름다운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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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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