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전 대통령은 애당초 공수처를 마뜩잖게 여겼다. 대선 후보 시절 “공수처에 엘리트는 안 가고 3류, 4류가 간다”는 비하성 발언을 내놓는가 하면 “공수처가 정치화된 데서 벗어나지 못하면 폐지를 추진할 것”이라고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는 다른 기관이 수사하는 사건에 대한 공수처의 이첩요청권 폐지가 포함됐다. 검경도 독자적으로 고위공직자의 부패 범죄를 수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실상 공수처를 무력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공수처법에서 이첩요청권을 삭제하는 방안은 여소야대의 국회에서 무산됐지만, 윤 전 대통령에게는 인사권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남아 있었다. 공수처 검사는 3년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연임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 눈 밖에 나면 임기 만료 뒤 짐을 싸야 한다. 민감한 사건을 수사하는 공수처 검사들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이 연관된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을 담당하는 공수처 검사들의 연임안 결재를 미루고 미루다가 검사 임기가 끝나기 53시간 전에야 재가하는 ‘몽니’를 부렸다. 당사자들은 물론 다른 공수처 검사들도 이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공수처 검사의 임용 역시 대통령의 재가가 필요한데, 있는 사람도 내쫓길 판에 인력 충원은 언감생심이었을지 모른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 검사 3명 신규 임명을 추천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끝내 재가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돼 직무가 정지된 뒤인 올해 1월 공수처는 추가로 검사 4명 임명안을 올렸지만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전 부총리 역시 결재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윤 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느라 뒷사람에게 미룬 듯한 느낌을 준다.▷결국 ‘대대대행’인 이주호 권한대행이 이들 공수처 검사 7명을 25일자로 임명하는 안을 재가하면서 공수처는 숨통이 트이게 됐다. 그렇다고 윤 전 대통령 등의 내란 혐의 수사, 채 상병 외압 수사 등 윤석열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연루된 주요 사건들을 수사하는 공수처의 인력난을 일부러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치졸한 방식으로 공수처의 수사를 방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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