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임수]5년 9개월간 검색 순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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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가 길어질수록 인기를 끄는 게 유통업계 자체 브랜드(PB) 상품이다. 유통업체가 직접 기획하고 주문 생산하는 덕에 저렴하고 품질까지 좋아 허리띠를 졸라맨 소비자들이 먼저 찾는다. 대형마트, 편의점 같은 오프라인 업체뿐 아니라 이커머스 회사들까지 PB 상품 개발에 힘을 쏟는 이유다. 국내 1위 이커머스 업체 쿠팡은 2017년 ‘탐사’ 브랜드로 PB 시장에 뛰어들어 식품 ‘곰곰’, 생활용품 ‘코멧’, 가전 ‘홈플래닛’ 등 30개에 가까운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쿠팡이 이 같은 PB 상품들을 경쟁 상품보다 우선 노출되도록 검색 순위 알고리즘을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쿠팡과 쿠팡의 PB 상품을 전담하는 자회사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같은 혐의로 유통업체로는 사상 최대인 1628억 원의 과징금을 물리고 검찰에 고발한 지 11개월 만에 기소가 이뤄진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쿠팡은 2019년 3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PB 상품과 직매입하는 로켓배송 상품 5만1300개의 검색 순위를 16만 번이나 조작해 상단에 고정적으로 노출시켰다. 특히 판매가 부진해 재고가 쌓인 PB 상품과 제조업체로부터 수백억 원의 인센티브를 받기로 한 직매입 상품을 집중적으로 띄웠다. 실제 판매량과 사용자 별점,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산출되는 검색 순위를 무시하고 무려 5년 9개월 동안 자사 상품을 밀어준 것이다.

▷이 같은 조작으로 100위 밖이던 PB 생수 ‘탐사수’는 단번에 1위로 뛰어 단일 제품으로는 쿠팡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이 됐다. 정상적으로는 100위권 진입조차 어려웠던 다른 PB 상품들도 줄줄이 1위로 올랐다. 이 덕에 쿠팡 PB 상품의 소비자 노출 횟수는 43%, 매출액은 76%나 늘었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쿠팡에 수수료를 내고 상품을 파는 21만 개 입점업체들은 자기 제품을 검색 상위에 올리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오프라인 유통업계에서 판치던 입점업체 차별이 혁신을 앞세우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더 노골화된 셈이다.

▷쿠팡은 지난해 공정위 처분이 나왔을 때 “상품 진열 방식은 업체의 고유 권한”, “시대착오적 조치”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공룡 플랫폼의 지위를 악용해 소비자와 입점업체를 기만하고 혁신과는 거리가 먼 배짱 영업을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공정한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 쿠팡은 재작년 처음 흑자를 낸 데 이어 지난해 매출 40조 원을 돌파하며 국내 전체 백화점 판매액을 뛰어넘었다. 온·오프라인를 통틀어 유통 1위에 오른 쿠팡이 소비자 신뢰와 유통 질서를 회복하지 못하면 한국 시장을 무섭게 잠식하는 알리,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에 역전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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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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