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광풍에 취업 한파까지 겹쳤던 2021년에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역대 최다인 28만 명이 응시했다. 집값이 워낙 올라 매물 한두 건만 중개해도 웬만한 직장인 월급을 능가하는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젊은층이 대거 몰렸다. 중년 고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응시자 열 중 넷이 20, 30대 청년이었다. ‘미친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현장 단속을 피해 불을 꺼놓고 몰래 영업하는 중개업소가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첫 시험이 치러진 1985년 이후 현재까지 배출된 공인중개사 자격증 소지자는 55만여 명이다. 경제활동인구 55명당 1명꼴로 공인중개사이니, ‘국민 자격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지만 이 중 80% 정도는 ‘장롱 면허’이고, 실제 영업하는 공인중개사는 11만1600명에 그친다. 부동산 시장이 식으면서 개업 공인중개사는 2023년 2월 이후 줄곧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년 넘게 새로 문을 연 중개업소보다 폐업하거나 휴업한 곳이 더 많다는 얘기다.
▷특히 올해 들어선 3개월 연속 새로 개업한 공인중개사가 1000명을 밑돌고 있다. 봄 이사철을 앞두고 신규 개업이 몰리는 시기에 개업자가 1000명 아래로 떨어진 건 통계 집계 이후 처음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길어지면서 서울과 지방을 가릴 것 없이 새로 문 여는 중개사가 급감했다. 거래가 끊긴 데다 고금리, 대출 규제, 내수 침체가 겹쳐 공인중개사들도 사무실 관리비와 임차료를 감당하기 힘든 처지다.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 연간 100만 건을 웃돌았던 전국 주택 매매 거래는 지난해 64만 건에 그쳤다.▷여기에다 부동산 직거래가 활발해진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최근 3년간 이뤄진 부동산 거래 319만 건을 살펴보면 중개와 직거래 비중이 거의 반반일 정도다. 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성사된 부동산 직거래는 3년 새 220배 폭증했다. 집값이 뛰면서 덩달아 치솟은 중개수수료가 부담인 데다 ‘건축왕’ ‘빌라왕’ 같은 전세사기에 공인중개사가 빠짐없이 등장한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새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 부동산중개업소부터 들어선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지만, 이젠 공인중개사도 살아남는 것 자체를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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