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내 개봉작 흥행 2위에 오르며 관객 1680만 명을 돌파한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에 휘말렸다.
서울서부지법 제21민사부(신명희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미방영 드라마 '엄흥도'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고(故) A씨의 유족이 왕사남 공동 제작사인 온다웍스와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쇼박스 등을 상대로 제기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의 첫 심문기일을 열었다.
이날 심문에서 양측은 작품의 핵심 서사 구조와 구체적인 설정의 유사성을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제작사 측 대리인은 "두 작품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가처분을 신청할 법적 권리(피보전권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족 측이 표절 근거로 내세운 단종의 폐위나 엄흥도의 시신 수습 등은 "역사적 사실 그 자체에 불과하다"며, 이를 극화할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전형적인 장면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제작사 측은 "유족 측 시나리오가 엄흥도의 충절과 순절에 무게중심을 둔 반면, 영화는 인물 간의 관계 설정, 갈등이 전개되는 방식, 결말에 이르는 과정까지 서사 구조가 본질적으로 상이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온다웍스는 지난 3월에도 "타 저작물을 표절한 사실이 전혀 없으며 법적 절차를 포함해 단호하게 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유족 측은 엄흥도의 31대손인 고인이 2000년대 초반 방송사 등에 투고했던 시나리오의 독창적 각색 요소가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제시한 유사성은 구체적인 장면과 인물 구도 등 총 7가지다. △유배된 단종이 음식을 거부하다 마음을 열고 특정 음식을 먹는 설정(영화는 올갱이국, 시나리오는 메밀묵) △엄흥도가 단종의 반응을 마을 사람들에게 대신 전달하는 전개 △절벽에서 투신하려는 단종을 엄흥도가 만류하는 장면 △엄흥도의 자녀를 외아들로 압축하거나 궁녀들을 단일 인물로 각색한 점 등이 포함됐다.
유족 측은 대기업 제작사를 상대로 무리한 싸움을 벌이려는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도, 창작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작품에 원작자의 이름을 명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재판부는 "소재나 주제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유족 측이 침해를 주장한 7가지 창재적 요소에 대해 제작사 측의 반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출하라"고 양측에 지시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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