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 출구조사에서 가장 눈에 띈 숫자는 서울의 2030 남성 표심이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기준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남성의 75.3%, 30대 남성의 61.8%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050 남성은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 같은 남성 집단 안에서도 세대에 따라 전혀 다른 선택을 한 셈이다.
출구조사는 정원오 우세를 예측했지만 개표 결과는 뒤집혔다. 투표 결과의 최종 분석이 나와야겠지만 2030대 남성 표심이 역전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이대남의 보수화’로 단정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2030대 남성 표심에는 젠더 갈등, 병역과 공정 담론, 부동산 진입 장벽, 정권 견제 심리, 후보 경쟁력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청년층 표심을 특정 세대의 이념 변화로만 읽으면 핵심을 놓칠 수 있다.
출구조사가 정치권에 던진 질문은 ‘왜 2030 남성은 진보 진영의 언어에 냉담한가’가 될 것이다. 노동자 보호, 약자 보호, 공공성 강화라는 구호가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는가. 해답은 고용과 자산 형성의 경로가 막혀 있다는 불안과 좌절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청년 고용 지표는 이미 경고음을 내고 있다. 올 4월 기준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3.7%로 전년 동월보다 1.6%포인트 떨어졌다. 24개월 연속 하락한 것으로, 2021년 4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청년층 취업자는 342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19만4000명 줄었다. 공식 실업률만 보면 7.1%로 전년보다 소폭 낮아졌지만, 고용률과 취업자 감소를 함께 보면 청년층의 노동시장 이탈이 더 본질적인 문제다.
‘쉬었음’ 통계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4월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39만1000명으로 3개월 연속 감소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25~29세 쉬었음 청년은 21만7000명으로, 20년 전 같은 연령대의 2.6배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첫 직장 진입이 늦어지고, 구직 실패가 반복되면서 아예 노동시장에서 물러나는 청년이 쌓이고 있다.
첫 일자리의 문도 좁아졌다. 신규 채용에 해당하는 근속 1년 미만 취업자 가운데 청년층 비중은 2006년 33.6%에서 2025년 25.2%로 낮아졌다. 학교를 마치고 첫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도 2021년 10.1개월에서 2025년 11.3개월로 길어졌다. 청년들이 게으르거나 눈높이가 높아서가 아니라,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문턱 자체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에게 절실한 것은 보호받을 권리가 아니라 진입할 기회다. 정규직 일자리는 좁고, 대기업·공공부문 진입 장벽은 높다. 집값은 소득만으로 따라가기 어렵고, 전세와 주택담보대출 문턱도 높아졌다.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질수록 자산시장 진입도 늦어진다. 청년의 불안은 고용에서 시작해 주거와 결혼, 자산 형성으로 번진다.
이 지점에서 진보의 보호 담론과 충돌이 빚어진다. 정년 연장, 원청 교섭 확대, 기성 근로자 보호 강화는 모두 필요한 논의다. 하지만 노동시장 밖에 있는 청년에게는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이미 좋은 일자리에 들어간 사람들의 울타리를 더 높이는 정책, 신규 진입자의 몫을 줄이는 정책으로 읽힐 수 있어서다. 보호받을 직장이 없는 세대에 보호 강화는 때로 배제의 다른 이름이 된다.
물론 4050을 한데 묶어 근로 기득권층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다. 그 안에도 비정규직, 자영업자, 하청 노동자, 주택 대출에 눌린 중산층이 있다. 이번 표심을 ‘청년 대 기득권’ 구도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다만 노동시장에 진입할 세대와 이미 들어간 세대가 같은 정책을 전혀 다른 언어로 받아들인다는 점은 분명하다. 내부자에게 보호는 안전망이지만, 진입자에게 '닫힌 문'이다.
정치권이 이 신호를 혐오나 선동의 결과로만 치부하는 게 정답일까. 2030 남성의 선택은 진보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 자신들의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불안의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필요한 것은 청년 달래기가 아니다. 노동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교육과 일자리의 미스매치를 줄이며, 신산업에서 청년이 경력을 시작할 초입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정년 연장이나 노동권 확대를 논의하더라도 청년 신규 채용과 세대 간 기회 배분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주거 정책도 마찬가지다. 이미 집을 가진 사람과 무주택자의 이해관계를 구분해야 한다.
진보는 노동시장 밖에 있는 청년에게도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가. 보호의 정치를 넘어 기회의 정치로 가고 있는가. 이것이 지방선거 출구조사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이다. 해답을 누가 주느냐에 따라 2030 표심은 앞으로 치러질 선거에서도 판세를 좌우하는 스윙보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3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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