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법정 세웠으나 증거 불충분
다른 외국인 2명은 소재 파악 안돼
28년 전 인천 서구 폐수 처리업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진 외국인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사건이 다시 미궁에 빠졌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인천원외재판부 형사1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1997년 인천시 서구의 한 폐수 처리 위탁업체에서 근무하던 외국인 노동자로, 당시 같은 업체 차장으로 일하던 B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같은 해 12월 실종된 B씨는 한 달여 만인 이듬해 1월 22일 업체 지하 폐수 탱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가슴에 20㎏짜리 모터가 묶인 채 마대로 싸여 있었고, 머리에는 5㎝ 크기의 함몰된 상처도 확인됐다.
폐수 탱크로 향하는 길은 파이프와 산소 발생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일부는 폭이 15∼20㎝에 불과했다. 이에 경찰은 무거운 모터까지 매단 성인 남성을 혼자 옮기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최소 2명 이상이 시신 유기에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사망은 A씨를 포함한 외국인 근로자 3명으로 좁혀졌다. 술에 취한 B씨가 종종 공장 기숙사를 찾아 이들에게 욕설이나 폭행을 했다는 진술 등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A씨 등은 여권과 물품을 챙겨 자국으로 떠난 뒤였다. 이들 중 주범으로 의심받던 외국인 C씨는 자국으로 출국한 뒤 지인과의 통화에서 “너무 괴롭혀 죽일 수밖에 없었다”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는 듯했으나 27년이 지난 2024년 7월 인터폴 적색수배를 피해 도피하던 A씨가 외국 공항에서 체포되며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2월 국내로 강제 송환된 A씨는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섰지만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거나 살해를 공모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A씨가 임금까지 포기하고 급히 도주한 점 등은 의심스럽지만, 범죄를 증명할 직접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사건 현장으로 추정되는 공장을 2차례 수색했는데도 범행에 쓰인 흉기와 피해자 혈흔 등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피고인이 남긴 작업복과 신발은 물론 피해자 시신에서도 피고인과 관련된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이 C씨 등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피해자를 살해할 만큼의 적개심을 갖고 있었다는 범행 동기도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피고인이 피해자의 사망을 알고 사건에 연루되는 것이 두려워 도주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B씨를 직접 살해하지 않았더라도 사건 당일 야간 근무자로 범행을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살인 방조’로라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주변 증언처럼 피고인이 평소처럼 야간 근무 중 잠이 들어 범행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며 “피고인이 피해자가 위험에 빠진 사실을 알고도 구조하지 않아 범행을 도왔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검찰 항소를 기각했다.
나머지 외국인 2명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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