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시간의 집념…블루체크에 '꿈'을 수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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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시간의 집념…블루체크에 '꿈'을 수놓다

아름다움은 찰나의 순간이기도, 켜켜이 쌓아 올린 기나긴 세월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한 가지만을 묵묵히 해낸 장인들의 손끝에선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더 효율적으로, 더 빨리,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답도 절대 쉽게 얻는 법이 없다. 일부러 돌고 돌아, 모두가 완벽하다고 말해도 아주 작은 차이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이를 장인정신이라고 부른다.

스웨덴 장인정신을 대표하는 왕실 침대 브랜드 ‘해스텐스’는 173년이라는 긴 역사 동안 수천, 수만 번의 실패를 겪었다. 최고급 천연소재를 구하는 것부터 이를 소독해 안정적인 원재료로 탈바꿈시키는 것, 내장재의 양과 품질을 결정하는 것, 바느질을 몇 땀 했을 때 내구성이 뛰어난지 확인하는 것 등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건 없었다. 173년의 역사는 도전과 혁신의 세월이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말 안장 속재료였던 말총(말 꼬리털)으로 매트리스를 만들기 시작한 게 해스텐스의 출발점이었다. 창립자 페르 아돌프 얀손의 5대 후손인 얀 리데 최고경영자(CEO)는 173년째 가족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47년 전 부친이 처음 생산한 ‘2000T’ 1호 모델을 지금도 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스텐스는 장인정신에서 찾았다. 어떤 자세로 누워도 척추가 곧게 펴지려면, 불편함 없이 잠에 빠져들려면 가장 좋은 원재료로 속을 채우고 단단하게 받쳐주되 속재료가 흐트러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 북스웨덴에서 느리게 자란 단단한 소나무, 수십 시간 소독하고 꼬았다가 정교하게 잘린 말총, 바느질 전 패브릭을 편평하게 놓아주는 3일간의 ‘천 휴식 시간’, 이미 튼튼한데도 더 튼튼하게 제작하기 위한 장인들의 600시간. 이 모든 것이 숙면을 위한 조건을 완성한다.

스웨덴 왕실이 1952년부터 줄곧 해스텐스 침대만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바로 ‘지금껏 본 적 없는 수준의 장인정신’. ‘그랜드 비비더스’라는 최상급 침대를 만들기 위해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죽만을 연구했다. 색감과 광택, 두께 등이 다른 누벅, 가오리 등 여러 종류의 가죽을 덧댔다. 모서리를 네모반듯하게 디자인하기 위해 아마섬유를 뭉친 네모난 부품을 따로 제작한다. 비비더스 전담팀이 600시간을 들인 뒤 비로소 침대가 완성된다. 침대 하나에 10억원이라는 가격이 책정된 이유다.

말총·순면·양모로 쌓은 37겹 매트리스, 173년 匠人이 빚은 '웰 슬립'
해스텐스가 탄생한 스웨덴 셰핑 '드림 팩토리'를 가다

해스텐스의 장인들이 말총, 양모를 여러 겹 포갠 톱 매트리스를 블루체크 천으로 덮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해스텐스 제공

해스텐스의 장인들이 말총, 양모를 여러 겹 포갠 톱 매트리스를 블루체크 천으로 덮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해스텐스 제공

한때 여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이던 마리아 샤라포바가 2004년 윔블던 대회 우승 상금으로 해스텐스 침대를 구입했다고 밝힌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큰맘 먹고 해스텐스를 샀는데 인생 최고의 투자였다”고 고백했다. 10억원에 달하는 ‘그랜드 비비더스’의 첫 구입 고객이 캐나다 출신 유명 래퍼인 드레이크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스텐스는 고객 정보를 공개하지 않지만, 스스로 구입 사실을 알린 이가 많다. 베컴 부부, 브래드 피트, 톰 크루즈, 앤젤리나 졸리 그리고 국내에선 제니와 아이유까지. 이들이 ‘해스텐스 광팬’을 자처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해스텐스 침대 위에선 숙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이 다르길래 수억원에 달하는 침대를 선뜻 구입하게 되는 걸까, 궁금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상업도시 셰핑은 해스텐스 본사와 공장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해안과 인접해 전 세계로 해스텐스 침대를 보내기 용이하다. 전 세계에 판매되는 해스텐스 제품은 100% 이곳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해스텐스 직원이다. ‘해스텐스 드림 팩토리’ 안에선 공정별로 작업자 150여 명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말총을 꿰매거나 고르는 기술자, 섬유를 받치는 직원, 솜을 묶는 사람, 중간 바느질 담당자, 나무 틀을 고정하는 직원 등 역할이 세분돼 있었다.

스웨덴 셰핑에 있는 해스텐스 본사 전경. 해스텐스 제공

스웨덴 셰핑에 있는 해스텐스 본사 전경. 해스텐스 제공

바느질 팀에서는 롤 형태로 말려 있던 천을 72시간 동안 평평하게 펼쳐 안정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천이 충분히 펴진 뒤에야 톱 매트리스와 중간 매트리스, 베이스에 필요한 바느질 작업에 들어간다. 말총 팀은 수차례 말총을 세척하고 멸균한 뒤 스프링 모양으로 꼬기 위해 타래를 밧줄처럼 만든다. 이를 고온 건조한 다음 일정한 길이로 잘라주는 기계에 넣는다. 밧줄이 풀리면서 스프링 말총이 만들어지는데 장인이 결과물을 일일이 분류한다. 이를 매트리스 속에 채우기 위해 면과 양모 혼방 섬유 천 위에 말총을 고르게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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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베드 마스터’로 불리는 장인들이 일정한 두께로 말총을 일일이 채운다. 그러면서 불량품을 손으로 골라낸다. 그 위에 또 면-양모 혼방 섬유를 덮는다. 섬유 위에 말총이 붙어 있으면 손으로 떼어낸다. 블루체크 패브릭으로 덮었을 때 말총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2인 1조로 계속 이 작업을 반복한다. 옆에는 그날 두 명의 장인이 만들어야 할 톱 매트리스의 작업량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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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가 특이했다. 해스텐스는 모든 사이즈를 주문 제작해준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 사이즈의 나무 틀부터 제작한다. 151㎝×157㎝, 300㎝×285㎝ 등 기성 침대에는 없는 나무 틀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무 틀 안에는 하단 매트리스를 넣는데 본넬 스프링과 함께 아마 섬유로 만든 천이 들어간다. 스프링의 삐걱거리는 소음을 없애고 정전기를 우회시킨다. 프레임용 나무는 북스웨덴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소나무만 쓴다. 특히 ‘비비더스’, 그랜드 비비더스 모델에는 옹이조차 없는 최상급 나무만을 쓰고 나무 연결 부위에도 나뭇조각을 꼭 맞게 채워 넣는다.

베이스, 중간, 톱 매트리스는 각각 면-양모 혼방 섬유와 말총, 아마로 겹겹이 채워진다. 스프링 위아래도 마찬가지다. 적게는 10여 개, 많게는 38개 층을 쌓는다. 그래서 무게가 1t이 넘기도 한다. 각 매트리스는 장인들의 바느질로 완성된다. 라텍스, 폴리우레탄, 발포 고무 등 합성화학물질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합성물질 위에서 잠들면 공기가 순환하지 못하고 온도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해스텐스가 오랜 역사 동안 검증한 말총과 양모, 면, 소나무, 아마 등 최고의 천연재료를 고집하는 이유다.

인기 모델인 ‘2000T’에는 36.7㎏의 소나무와 118.6㎏의 철강, 47.8㎏의 자연 섬유가 들어간다. 총 37개 층으로 무게는 203.1㎏에 달한다. 가격은 1억1200만원대. 현재 해스텐스의 베스트셀러다. 27개 층으로 이뤄진 ‘마랑가’도 인기 상품이다. 해스텐스의 입문용 모델로, 3800만원대다. 이보다 상위급인 ‘드리머’는 1억3700만원대, 비비더스는 4억6000만원대, 그랜드 비비더스는 9억6000만원대(210cmX210cm)다.

비비더스 제작팀은 가장 경력이 많고 손재주가 뛰어난 15명으로 구성된다. 비비더스는 장인 9명이 360시간을 들여, 그랜드 비비더스는 600시간을 쏟아 완성한다. 비비더스 팀은 해스텐스 장인정신의 정수다. 스프링 사이사이를 일일이 실로 엮어 적당한 텐션을 만들어낸다. 손의 감각으로만 알 수 있다. 그랜드 비비더스 하단에 들어가는 가죽은 5년여간 연구한 결과물이다. 매트리스의 네 모서리는 다른 브랜드들이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90도 직각을 구현해냈다. 아마를 압축한 정사각형 부품을 하나하나 제작해 모서리에 배치한 것이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질문이 나왔다. “해스텐스만 할 수 있으니까”라는 답을 들은 순간 ‘억’ 소리 나는 가격도, ‘해스텐스 팬’을 자처하는 유명인들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양끝 뾰족한 30㎝ 바늘로…겹겹이 내장재 엮어 고정
특별한 기법 '사이드 스티칭'

600시간의 집념…블루체크에 '꿈'을 수놓다

‘사이드 스티칭’은 해스텐스를 더 완벽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법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길이 30㎝ 이상의 바늘은 양 끝이 뾰족한 형태로 특수 제작됐다. 해스텐스는 모든 침대의 사이드에 바늘을 넣어 내부의 면, 양모, 말총, 아마 등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엮어낸다. 이미 잘 고정돼 있지만 좀 더 튼튼하게 제작하기 위해서다.

장인들은 사이드스티칭할 때 단 한 가닥의 실로 침대 전체를 엮는다. 중간에 끊기면 장력이 침대 부위마다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침대 내장재와 포켓 스프링을 거쳐 반대 지점을 통과하는데, 정교한 장인의 손길에 따라 실이 윗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단 한 명의 장인이 4일에 걸쳐 이 작업을 마무리한다.

직접 사이드 스티칭을 배워 보니 길고 굵은 바늘을 찔러넣기조차 쉽지 않았다. 옆면 중앙을 찔러 윗면으로 바늘을 꺼낸 뒤 다시 바늘의 뒤쪽 뾰족한 부분을 옆면으로 꺼내야 했다. 바느질 간격은 매트리스 제품마다 다르다. ‘비비더스’는 톱 매트리스의 블루체크 모든 면을 일일이 손바느질한다. 최상의 숙면을 위해 그렇게 한다고 한다.

해스텐스 침대의 기본 옵션은 매트리스의 단단한 정도 순으로 펌, 미디엄, 소프트 등 세 가지다. ‘드리머’, ‘비비더스’, ‘그랜드 비비더스’ 모델에선 엑스트라 소프트도 고를 수 있다. 가장 단단한 엑스트라 펌은 모든 모델에 적용할 수 있지만 별도로 주문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펌과 미디엄의 인기가 높다. 유럽과 미주 등에서는 소프트와 엑스트라 소프트를 선호하는 편이다.

셰핑=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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