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송재민 기자] 사모펀드(PEF) 업계가 회수 시장 경색에 직면하면서 중간 회수 전략을 강화해온 가운데, 최근 홈플러스 사태로 촉발된 여론 변화가 업계 전반에 혼란을 불러오고 있다. 특히 DPI(납입금 대비 분배금) 지표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고배당이나 분할 매각 등 중간 회수 전략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업계는 명확한 제도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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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
“IRR보다 DPI”…LP가 선호하는 진짜 성과 지표
사실 DPI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IRR(내부수익률)을 대체할 성과 기준으로 DPI가 점차 주목을 받아왔다. IRR은 투자 기간의 현금흐름을 감안한 연평균 수익률로, 회수 전까지는 장부상 평가 이익에 머무르는 수치다. 반면 DPI는 실제로 투자자(LP)에게 현금으로 분배된 금액을 기준으로 삼는 지표다. 숫자 자체가 ‘가공이 어렵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뢰를 얻고 있다.
한 대형 PEF 관계자는 “장부상의 기업가치가 아니라 진짜 현금으로 LP에게 얼마를 돌려줬느냐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DPI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라며 “실제 현금 흐름을 기반으로 한 실적이기 때문에 LP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선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때문에 PEF들도 자연스럽게 다양한 중간 회수 전략을 시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DPI 중심의 성과 기준 변화는 GP들의 회수 전략을 전방위적으로 바꾸고 있다. 상장(IPO)이나 M&A만으로는 원하는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 PE들은 배당, 리캡(재무구조 재편을 통한 자본 회수), 세컨더리 거래, 컨티뉴에이션 펀드, 일부 사업부 분할 매각, 부동산 유동화 등 다양한 전략들을 전개해 왔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쪼개팔기’ 여론…업계는 “제도화 필요”
이 같은 흐름에 급제동이 걸린 건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운용 사례가 비판의 중심에 서면서다. 자산을 쪼개 팔거나 고배당을 단행한 전략에 ‘먹튀’ 논란이 불거지자, 그간 자연스럽게 수용돼온 중간 회수 전략 자체가 부정적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MBK는 높은 DPI를 기록한 대표 운용사로,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주는 충격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김병주 MBK 회장이 투자자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도 “MBK의 DPI는 업계 상위 25%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 회수 상황도 긍정적일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만큼 DPI는 오랜 기간 동안 운용 실적을 평가하는 ‘정량적 잣대’로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홈플러스 논란 이후 일부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는 DPI 중심 평가에 의구심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PEF가 투자기업의 자산을 유동화해 배당을 늘리는 등의 전략이 일시적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고, 일부 LP는 “앞으로는 그런 전략을 구사하는 PE와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여론이 업계 전체로 확산하면서, 정당한 회수 전략까지 위축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IPO나 경영권 M&A 등 전통적 엑시트 루트만으로는 회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올해 대부분의 기업들이 긴축 경영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며, 매각 대상 자산은 넘쳐나지만 실제 거래로 이어지지 않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인식 속에서 업계는 DPI 중심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명확한 제도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데 점차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와 정치적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실적 투명성을 유지하려면 일정한 규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운용사 임원은 “시장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회수 전략을 쓰지 않으면 LP에게 성과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지금처럼 중간 회수 자체가 논란이 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PE 본연의 기능인 구조조정과 자금 회수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