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자금, 국가경쟁력 높여...녹색 산업 단지 조성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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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ESG 투자, 금융이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민연금조차 장기투자 관점에서 ESG를 반영하지 못하고, 정부는 녹색 산업 기반을 마련하지 않아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경ESG] 커버 스토리 - ESG 자금, 혁신 산업에 몰린다 ⑥
인터뷰 - 박상인 서울대 교수

박상인 서울대 교수. 사진=서범세 기자

박상인 서울대 교수. 사진=서범세 기자

“ESG는 장기 생존 전략이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이를 유행어처럼 소비하고 있다. 이 상태로는 글로벌 투자자의 신뢰와 산업 경쟁력을 모두 잃을 수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4월 9일 〈한경ESG〉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금융의 구조적 한계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국가경쟁력의 본질은 산업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며 ESG를 단순 테마 투자나 워싱용 수단이 아닌 국가적 생존 전략 차원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국 ESG 금융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전 세계 자본시장은 이미 ESG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기관투자자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국민연금조차 ESG를 투자에 체계적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이 ESG에 너무 무감각하다고 느낀다. ESG가 장기투자적 관점에서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중요성을 모르는 구조적 원인이 있나.

“근본적으로는 정부 정책 자체가 ESG 리스크를 고려하도록 설계돼 있지 않다. 특히 한국의 에너지 산업은 대부분 공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민간자본이 리스크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다. ESG 펀드의 역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국의 지배구조는 너무 복잡하고 왜곡돼 있어 금융을 통한 교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 그런 측면에서 일본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일본은 2015년 아베노믹스 개혁과 함께 기업의 소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 개편을 병행했다. 일본 증권거래소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공식 어젠다로 채택하고 행동주의 펀드가 이를 뒷받침했다. 한국은 정부가 판을 만들어주지 않으니 행동주의, ESG 펀드도 소극적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거꾸로 투자자가 기업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는 역할이 제한되니 기회주의적·약탈적 펀드만 한국에 들어오는 형국이다.”

- ESG 투자가 국가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나.

“가능하다. 우선 기업 밸류업을 위한 소유 지배구조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녹색 산업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전통적 중화학 중심의 제조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탄소세가 본격 도입되면 철강·시멘트·석유화학 같은 고탄소 산업은 경쟁력을 급속도로 잃게 될 것이다. 이제는 이런 구조를 전환해야 할 때다.”

- 구조 전환의 첫걸음은 무엇이어야 하나.

“가장 시급한 것은 녹색 산업 클러스터, 즉 RE100(재생에너지 100%) 산업단지 조성이다. 예컨대 동남권·호남권처럼 재생에너지를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 지대를 만들어야 한다. 해상풍력과 남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지역부터 시작해 송전망, 산업단지 연계를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ESG 자금이 국가경쟁력을 향상하고 제조업을 위기 국면에서 구출하는 산업에 투입해야 한다.”

- 재생에너지와 산업 경쟁력은 어떻게 연결되나.

재생에너지는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어떤 산업은 구조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이를 막으려는 시도는 종종 무모하다. 예컨대 미국은 1950~1960년대 조선·철강·자동차 산업의 쇠퇴를 보조금과 관세, 보호무역으로 막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금 한국도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철강 산업은 고탄소배출로 인해 생존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포스코는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성을 자랑하지만, 주로 범용 철강제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미 독일, 일본, 미국은 특수제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특수제로 산업구조를 재편하지 않으면 중국에 따라잡힐 것이다.”

- 최근 현대차가 포스코와 함께 미국에 저탄소 제철소를 짓기로 했다.

“산업 공동화의 신호다. 그러한 제철소를 국내에 만들어야 하며,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없으니 글로벌 기업조차 한국을 떠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 RE100 미이행으로 계약이 파기되고, 자동차 부품사는 유럽에 공장을 짓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는 이 같은 흐름을 무관심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기업이 아닌 정부가 산업 판을 열어줘야 한다.”

- ESG 자금이 녹색·혁신 산업에 흘러들지 못하면.

“결국 ‘워싱’이 강화된다. ESG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로는 단기 수익성만 좇는 펀드가 된다. 정책적 유인 없이 민간의 ESG 자율 투자는 한계가 있다. 대만 TSMC는 RE100을 위해 20년짜리 장기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계약을 체결했고, 대만 정부는 송전망·입지 기반을 조성했다. 한국은 이에 한참 뒤처져 있다. 아직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제조업의 몰락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다만 ‘서서히’ 진행되기에 정치권에서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 정부의 녹색 산업 정책 방향은 어디로 가야 하나.

“정부 개입이 필요한 영역은 명확하다. 대규모 송전망 투자, 산업단지 조성 등은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는 명백한 시장 실패 영역이며, 정부가 인프라를 조성해주는 것이 ESG 정책의 출발점이다. 보조금이나 세액공제 같은 유인책도 일부 필요하겠지만, 우선은 산업 공동화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

- 한국에서 전망 있는 혁신·녹색 산업은.

“혁신 경제의 본질은 ‘누가 성공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정부가 직접 특정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방식은 이미 낡았다. 필요한 것은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 구조다. 진입·퇴출 장벽이 낮고, 혁신의 보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 아직도 착취 구조와 불공정 경쟁이 만연하며, 이 구조를 깨지 않으면 혁신도 없다.”

- 기업의 ESG 전략,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다수 기업이 ESG를 대관 업무 수준으로 다룬다. ESG 부서의 주된 역할이 규제 대응이라는 말이 이를 방증한다. 진정한 ESG는 전략 부서, 재무 부서, 리스크 관리 부서에서 다뤄야 한다. 그래야 ESG가 기업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만 탓할 일은 아니다. 투자자와 정부, 시장 전체가 ESG를 중요한 변수로 만들지 않으면 기업도 바뀌지 않는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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