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차전지 스타트업 ORLIB의 사토 마사하루 사장은 최근 몇 년간 밤잠을 설쳤다. 2년 전 기존 리튬이온전지에 들어가는 전극재보다 효율을 두 배가량 높인 신소재를 개발했지만 일본에서 마땅한 제조사를 찾지 못해서다. 그러다가 KOTRA 도쿄무역관 소개로 한국의 에스엔티를 만나면서 일이 풀렸다. 지난 4월 5년간 1000만달러 규모의 제조 장비를 공급받기로 양해각서를 맺었다.
한·일 기업은 1960~1980년대 ‘의존’ 관계, 1990~2010년대 ‘경쟁’ 관계를 지나 최근 대등한 ‘협력’ 관계로 접어들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일본 도요타의 미국 공장에 납품하기로 하는 등 미국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과 일본 완성차 업체 간 제휴가 늘어난 게 대표적이다. 일본 해운사가 미·중 갈등을 의식해 대규모 컨테이너선 발주를 중국 업체에서 HD현대중공업으로 돌린 사례도 있다. 삼성물산이 스미토모상사와 함께 카타르 담수복합발전 사업을 따내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은 오는 22일 수교 60주년을 맞는다. 미·중 갈등과 중국의 제조 굴기,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한·일 기업이 협력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는 “한·일 기업들이 중국에선 쫓겨나고 미국은 입장료가 비싸졌다”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