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1991년~1993년 회의록 공개
北 “야! 어디 책상을 쳐” 고성에
南 “핵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놈” 응수
핵사찰 이견에 “깡패” “강도” 욕설·인신공격
“야! 어디 책상을 쳐!”1992년 3월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 핵협상. 북측 대표인 최우진 당시 외교부 순회대사는 책상을 쾅 내리치며 이같이 말했다. 그와 날 선 공방을 벌이다 먼저 책상을 쳤던 임동원 당시 통일원 차관(전 통일부 장관)은 더욱 격분해 “(자국에)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놈(최 대사)이 핵문제를 토의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양측이 상대방을 “깡패” “강도” 등으로 부르며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폐회했다.
30일 통일부가 공개한 3836쪽 분량의 ‘남북대화 사료집’ 문서에는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남북 대표단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인신공격과 비속어를 주고받으며 충돌하는 장면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회담 문서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의 기록으로, 노태우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채택 과정과 이후 남북이 처음으로 마주앉아 가졌던 비핵화 협상 내용을 담고 있다.
● 신경전 중 김일성 사진 찢은 北 대표
1992년 12월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13차 회의에서는 서로 공방을 주고받다 북측 대표가 김일성 주석의 사진이 실린 기사를 찢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북측은 우리 측이 미국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해 자신들을 압박한다고 주장했다. 최 대사가 “외세와 야합했다”고 비난하자 공로명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전 외무부 장관)은 “누가 외세에 사대적이냐”며 김 주석과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꺼내 들며 반박했다. 외세와 결탁한 것은 북한이라는 취지에서다. 격분한 최 대사는 이를 찢으며 “도발”이라고 분개했고, 공 원장이 “위대한 지도자 사진인데 왜 찢냐”고 하며 소란이 이어졌다.
같은 해 4월에는 최 대사가 공 원장에게 “생떼 쓰는 대머리”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협상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탈모가 있던 공 원장의 외모를 조롱한 것이다. 남북회담 문서 공개 예비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정승훈 전 남북회담본부장은 “1990년대 초반 협의는 역대 남북대화 중 가장 치열하고 거친 양상으로 전개됐다”고 평가했다.● 北, ‘레임덕’ 노태우 정부에 불신 드러내기도북측이 1992년 12월 한국 대선을 주시하며 협상을 지연한 정황도 공개됐다. 대선 8일 전 열린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12차 회의에 북측은 “새 정부가 들어오면 협상을 원점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냐”고 불신을 드러내며 압박했다. 임기 말 레임덕에 접어든 노태우 정부와 중대 합의를 서두르기보다 차기 정부의 대북 기조를 확인한 뒤 움직이려는 계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제시한 상호 핵사찰 규정 초안도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1992년 3월 개최된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우리 측 대표단은 연 40개 이내 시설에 대한 불시 사찰을 주장한 반면, 북측은 사찰 5일 전에 상대측에 통보하고 사찰 대상 역시 쌍방 합의할 것을 요구했다. 북측이 고강도 검증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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