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거주 직장인 유다희 씨(28)는 좋아하는 브랜드 옷은 몇 달이고 직구를 해서 기다려 입을 만큼 패션에 대한 선호가 분명한 소비자다. 단순히 가격 때문이 아니라 어떤 브랜드를 입는지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해서다. 하지만 유 씨가 유일하게 브랜드를 따지지 않고 가격과 품질만 보고 사는 옷이 있다. 흰 티셔츠, 청바지, 검은 슬랙스 등 '기본 아이'템이다.
최근에는 반팔 티셔츠를 사면서 SPA(제조직매형 의류) 브랜드에 들러 1만원대 저렴한 제품을 몇 개 샀다. 그는 “기본템은 디자인이 대부분 비슷비슷해 브랜드가 잘 드러나지 않는 옷이라 굳이 값비싼 제품을 사지 않는다”며 “올 여름엔 시원하고 세탁이 용이한 소재인지 정도만 따져 저렴한 제품을 여러 개 사서 돌려 입고 있다”고 말했다.
유 씨처럼 로고나 형태 등에서 제품 간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기본 아이템은 브랜드를 크게 따지지 않고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렴하면” 또는 “품질이 좋으면” 등의 인식으로 제품 자체 특성만 따져 사는 소비자가 많다는 얘기다. 때문에 브랜드 선호나 인지도 면에서 밀리는 국산 브랜드사들이 비교적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제품군이다. 국산 브랜드들이 속속 신제품을 내놓고 기본 아이템 시장 '선점'에 나선 이유다.
SPA 냉감 티셔츠 판매량 16배 '쑥'
특히 기본템을 잘 만들어 내놓으면 크게 효과를 보는 의류업체들이 SPA 브랜드다. 소비자들이 저가의 기본 아이템만 구입할 때 주로 들르는 매장이 박리다매를 지향하는 SPA 매장이기 때문. 18일 업계에 따르면 이랜드월드의 SPA 브랜드 스파오는 지난달 브랜드 전체 매출이 전년 대비 20% 늘었다. 여름 상품이 매출 증가세를 견인했는데, 이중 무지 티셔츠는 31% 증가하며 수요가 컸다.
1만원대로 반팔티 두 장을 묶어 파는 2팩 티셔츠 시리즈가 저렴한 가격 덕에 판매가 잘 됐다. 냉감 기능을 더한 쿨테크·쿨코튼 시리즈, 신축성을 높여 운동시에 입기 좋은 쿨 트리코트 티셔츠 등도 합리적 가격에 기능성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기준 소로나 티셔츠는 67%, 쿨코튼 티셔츠는 64% 각각 작년 5월보다 매출이 증가했다.
특히 접촉 냉감 기능이 특징인 쿨 트리코트 소재 티셔츠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찾는 이가 늘고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16배나 더 많은 물량이 팔려나갔다. 지난해엔 소량만 출시했지만 예상보다 잘 팔리면서 스파오 측은 올해 스타일 수와 물량을 대폭 늘렸다. 가격도 1만9900원으로 작년보다 23% 낮췄다. 통상 스포츠 브랜드가 판매하는 트리코트 티셔츠 가격의 3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9000원대 기본 티셔츠 품절 대란
이처럼 기본템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지면서 스파오는 최근 여성 베이직 아이템을 한데 모은 컬렉션을 새롭게 공개하며 기본 라인업을 강화했다. 쿨 썸머 카디건, 골지 민소매 티, 세미 크롭 반팔티 등 상의 라인은 물론 쿨 와이드 진, 나일론 카고 팬츠 등 하의까지 구성이 다양하다.
같은 업체의 여성복 SPA 브랜드 미쏘도 베이직 티셔츠 판매 호조에 힘입어 지난달부터 티셔츠 상품군 누적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16% 폭증했다. ‘베이직 R넥 티셔츠’는 출시 3개월 만에 아이보리와 블랙 컬러가 전량 품절되며 지난달 재생산(리오더)에 돌입했다. 해당 제품은 98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패션 유튜버의 ‘기본 티셔츠’ 블라인드 테스트 영상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아이템으로 선정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9900원의 합리적인 가격인데 착용감이 좋고 내구성까지 뛰어나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최근에는 유튜브 등 SNS 채널에선 MZ 고객 대상 기본 티셔츠 블라인드 리뷰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데, 브랜드 인지도 대비 기술력이 좋은 국내 SPA 브랜드 제품들이 호평을 얻는 분위기다. 솔리드 컬러의 유행 타지 않고 매일 입기 좋은 기본 티셔츠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늘면서 인스타그램에서는 ‘기본티’, ‘기본티셔츠’를 소개하는 게시글이 20만개를 훌쩍 넘어섰다.
기본템 라인업 확장하는 브랜드들
국내 패션 브랜드들도 앞다퉈 기본템 라인업 확대에 나섰다. 여름을 맞이한 만큼 대부분 반팔 아이템이다.
LF는 기본적인 무지 티, 로고 티는 물론 다양한 소재와 패턴의 셔츠, 고급스러운 반팔 니트까지 스타일의 폭을 넓힌 것이 특징이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던스트(Dunst)도 티셔츠 스타일 수를 전년 대비 30% 늘렸다. TNGT는 스트라이프 패턴 티셔츠를 전년 대비 10% 늘렸다. 다잉 티셔츠, 링거 티셔츠 등 올해 봄·여름(SS)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스타일을 다음달까지 순차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헤지스는 올해 기본 화이트 셔츠는 물론 하와이안 셔츠, 그래픽 오픈카라 셔츠 등 반팔 셔츠 라인업을 강화했다. 올해 SS 시즌 ‘데님 반팔 셔츠’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50% 증가했고, 시어서커 셔츠 역시 12%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2030대 고객 비중 역시 15%대에서 올해 22%로 확대됐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