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가장 많이 음악을 듣는 방식은 공연장도, CD 플레이어도, 라디오도 아닌 유튜브라는 미디어를 통해서이다. 커피를 내리면서, 산책을 하면서, 그리고 빨래를 개면서, 나는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1)의 1955년과 1981년 두 가지 버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내 방안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거려 비교해 들을 수 있다.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가끔은 핸드폰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게도 하지만, 이런 혜택을 포기하기에는 이미 나는 유튜브 없이 하루도 버티기 힘든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유튜브가 없었다면 놓쳐버렸을 수많은 음악가의 연주들을 생각해보면...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겠지.
1년 전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난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 건반은 손의 힘이 아닌 손의 무게로 쳐야 하고, 그러면서도 손가락 끝에는 힘이 있어야 한다? 건반을 깊게 눌러 치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리고 내려친 후 손의 힘을 빼라는 말은 또 무슨 말인가? 지금은 이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듯, 그 무엇하나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피아노 소리가 예뻐지는 방법 - 유튜브 채널 @YeonPiano]
비싼 개인 레슨비를 코끼리 다리 설명으로 마냥 낭비할 수는 없었기에,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건반을 두들기며 조금씩 진도를 나아가던 중, 알려준 적 없는 나의 고민을 어찌 미리 간파한 세상 친절한 유튜브 알고리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숨 고를 틈도 주지 않고 새로운 선생님들을 끊임없이 띄워 올렸다. 레너드 번스타인, 안드라스 쉬프, 다니엘 바렌보임2)이 내 피아노 선생님 후보들이라니! 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유명 연주자의 조언보다는 손의 무게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이 더 절실했기에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선생님들이 훨씬 더 필요했고, 그러던 중 연피아노(@YeonPiano)4)라는 유튜브 채널의 레슨 영상들을 보게 되었다.
연피아노는 4년 전에 개설되어, 오직 피아노에 관한 영상만으로 3만7000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1인 유튜브 채널이다. 온라인에는 이보다 더 크고, 영상 수도 많으며, 더 전문적인 편집 기술과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대형 유튜브 채널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이 채널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 채널을 운영 중인 피아니스트 임정연의 음악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연피아노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단순히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한 테크닉을 배우는 것 이상으로, 진심 내가 배우는 이 곡을 잘 표현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곤 한다. 많은 유튜버들의 과시용 브이로그에 익숙해진 나에게, 임정연의 브이로그는 신선한 충격이기까지 했다. 만약 브람스3)가 21세기에 다시 태어난다면 저렇게 하루를 보내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처음으로 알림 설정이라는 것을 켜게 되었다.
[임정연이 연주하는 <슈베르트 소나타 A 장조 D. 959 II. Andantino>]
피아니스트 임정연은 서울예고 재학 중 도미하여 콜번스쿨, 클리블랜드 음악원을 거쳐 메릴랜드주립대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메릴랜드 로욜라대 겸임교수 그리고 피바디 음악원 예비학교 교수진으로 재직 중이다. 이제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나에게는 과분한 선생님이지만, 이제 이분은 새벽 4시에도 내가 원하면 아르페지오 치는 법을 알려주고, 페달 법이 궁금한 나를 위해 꼼꼼하게 완성된 친절한 영상들을 24 시간 대기 시켜 두신다. 이런 호의에 내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구독’과 아낌없는 ‘좋아요’ 뿐이라니 믿기 힘들 만큼 풍요로운 배움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 - 유튜브 채널 @YeonPiano]
나는 개인적으로 피아노를 온전히 독학으로 배우는 것을 찬성하지는 않는다. 유튜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내 손목을 잡아 코끼리 다리까지 이끌어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직접 나를 지도해주시는 선생님만이 해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레슨비 등) 이제 그 다리를 더듬어 만지며 그것이 코끼리 다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오롯이 내가 풀어가야 할 숙제인데, 유튜브는 그 막막한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이해를 돕는데 그 누구보다 든든하고 친절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지난 4월 27일, 미국 워싱턴 DC 케네디 센터에서의 임윤찬 골드베르크 공연을 관람했다. 그리고 오늘은 결코 그 어디에서도 이제는 만나볼 수 없는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를 내방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거려 감상하고 있다. 현실과 온라인 세상의 균형. 마치 피아노 건반 위 왼손과 오른손의 밸런스처럼, 그런 삶이 필요한 세상이다.
[피아노 음악 채널 @YeonPiano 유튜버 임정연님 이야기]
P.S. 임정연님이 나와 그리 멀지 않은 매릴랜드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에 관한 칼럼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결국 나는 직접 그녀를 만나 인터뷰하고, 동영상으로 제작하는 작업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촬영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고, 필자의 미숙한 진행이 더해져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요약본5)으로 정리한 영상을 용기 내 올려본다. 처음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이 모든 과정을 홀로 해내는 임정연님을 포함한 모든 유튜버님께 존경을 표한다.
고지현 음악 칼럼니스트
1)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 1955년과 1981년, 두 차례에 걸쳐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하며 전설을 남긴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관련 영상 바로보기 1] [관련 영상 바로보기 2] 2)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 미국-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3)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독일-절제와 성실을 삶의 중심에 두고 조용히 음악에 헌신한 삶을 살았던 작곡가 4) 연피아노(@yeonpiano)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5) 임정연 인터뷰 풀 영상 [바로가기]
안드라스 쉬프(András Schiff, 1953~ ): 영국-지휘자,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 ): 아르헨티나/이스라엘/스페인-지휘자,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