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의 비수기로 여겨지던 여름이 클래식 축제의 계절로 탈바꿈하고 있다. 통상 연말연초에 누리는 작은 사치로 클래식 공연장을 찾던 관객들이 이제는 한여름 밤의 축제로 클래식을 즐긴다. 연주자들과 와인 한 잔으로 무대의 여운을 이어가는 줄라이페스티벌부터 세계적 거장이 총출동하는 클래식 레볼루션까지.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클래식 성찬이 준비됐다.
◇프랑스 음악의 모든 것
오는 7월 한 달간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리는 줄라이페스티벌은 프랑스 음악을 집중 조명한다. 베토벤, 브람스 등 매년 한 작곡가를 탐구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 단위로 변화를 시도했다.
올해 축제에선 드뷔시, 라벨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이 관객을 만난다. 지휘자 박강현과 피아니스트 홍석영이 다음 달 1일 개막 무대에 오른다. 31일 폐막 공연은 지휘자 박근태와 피아니스트 이관욱이 맡는다. 프랑스 실내악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29일 공연에는 피아니스트 박재홍, 첼리스트 문태국,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등이 함께한다.
참신한 연출이 돋보이는 무대도 눈길을 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옛 연인과의 마지막 전화 통화를 담은 프랑스 작곡가 풀랑크의 오페라 ‘인간의 목소리’다. 본래 구성은 소프라노 한 명이 극을 이끄는 1인 오페라지만, 다음 달 3일 공연엔 무용수가 함께 출연해 이별의 고통을 신체적 언어로 풀어낼 예정이다. 소프라노 이한나, 무용수 김연화, 피아니스트 정소라가 호흡을 맞춘다.
쉬는 시간 없이 연주 시간만 2시간에 달하는 무대도 마련됐다. 다음 달 28일 피아니스트 소냐 바흐가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이 쓴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 전곡(20곡)을 연주한다. 공연 후엔 연주자와 함께하는 와인 파티가 이어진다.
◇남성 소프라노의 이색 무대도
무더위가 절정인 8월에는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가 찾아온다. 개막일은 8월 18일. 2024년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지휘자 이승원이 예술의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라벨 작품 세곡을 선보인다. 라벨이 “환상적이고 운명적인 소용돌이”라고 묘사한 ‘라 발스’로 시작해 피아니스트 케빈 첸이 협연하는 ‘피아노 협주곡 G장조’, 국립합창단과 함께하는 발레 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 전곡으로 마무리된다.
같은 달 21일 여성 음역대를 소화하는 남성 소프라노 사무엘 마리뇨와 고음악 연주 전문 단체 카메라타 안티콰의 공연은 흔치 않은 무대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이틀 뒤 러시아 첼리스트 아나스타샤 코베키나가 협연하는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은 특유의 서늘한 긴장감으로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동유럽의 민속음악 세계로
8월 28일 개막하는 롯데콘서트홀의 클래식 레볼루션은 클래식 명곡의 기원을 파헤친다. 버르토크, 코다이, 드보르자크 등 자국의 짙은 민속 선율을 자신만의 음악 언어로 승화시킨 작곡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지난해에 이어 음악감독을 맡는다.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 등 세계에서 가장 바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게르스타인과 솔타니는 클래식 매체 바흐트랙(Bachtrack)이 발표한 ‘2025년 가장 바쁜 연주자’ 통계에서 각각 피아니스트 부문 1위, 첼리스트 부문 3위를 차지했다.
개막 무대는 이번 축제의 주제인 ‘뿌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안드레이 보레이코가 지휘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 키안 솔타니가 코다이의 ‘갈란타 무곡’,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b단조’,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선보인다. 버르토크과 코다이는 헝가리 민요를 수집하고 연구한 반면, 드보르자크는 체코의 전통 선율을 음악에 녹여냈다.
카바코스와 솔타니, 피아니스트 김선욱 등 클래식 대가들이 펼치는 8월 30일 실내악 공연도 기대를 모은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 스메타나의 ‘피아노 삼중주 g단조’와 브람스의 ‘피아노 사중주 제2번 A장조’를 연주한다.
정상급 솔리스트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리사이틀도 이어진다. 9월 1일 카바코스와 게르스타인이 함께하는 듀오 리사이틀이다.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C장조’ 등을 선보인다. 축제는 9월 4일까지다.
클래식 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여름 시즌에 장기 휴가에 들어가기 때문에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수의 아티스트들이 내한하는 시기로는 최적의 타이밍”이라며 “굵직한 공연이 몰려있는 연말연초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수기였던 여름이 새로운 성수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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