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고물가 상황에서 소비자는 배달 앱 때문에 음식이 비싸졌다고 하고, 정치권은 수수료에 상한을 씌우자고 한다. 힘센 플랫폼이 가져가는 몫을 줄여 가격을 낮추고 영세 음식점을 살리자는 것이다. 대금 정산이 늦어져 판매자가 피해를 보면 지급기한을 더 짧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대기업의 갑질이 문제되면 과징금을 몇 배로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모두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선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규제의 진짜 효과는 첫 번째 대상이 아니라, 그 비용이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에서 드러난다. 규제는 법조문 한 줄로 끝나지 않는다. 가격이나 거래조건에 비용으로 반영되거나, 거래량 감소로 되돌아온다. 약자를 지키려던 규제가 오히려 약자를 시장에서 밀어내는 일은 그렇게 벌어진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규제 강화의 역설’이다.
가격표 뒤에 숨은 규제 비용의 이전
역설의 뿌리는 배달 앱 같은 플랫폼이 전통적인 시장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데 있다. 플랫폼에는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가 고객이다. 소비자가 많을수록 음식점이 붐비고, 음식점이 많을수록 소비자가 모인다. 그래서 플랫폼은 한쪽 요금을 싸게 매겨 사람을 모으고, 다른 쪽에서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전체 거래량을 키운다.
신용카드사가 소비자에게는 포인트나 할인 혜택을 주고, 가맹점으로부터 결제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내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런 시장에서는 한쪽 가격만 보고 ‘너무 비싸다’고 섣불리 규제하면 엉뚱한 부작용을 낳는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규제로 낮춘 이후, 이른바 ‘알짜 카드’들이 잇달아 단종된 경험은 오래되지 않았다.
정부가 음식점 수수료에 상한을 씌워도,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비용과 수익구조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은 부족해진 수익을 소비자 배달비로 옮길 수 있다. 배달비가 오르면 소비자는 지갑을 닫는다. 주문이 줄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플랫폼이 아니라, 배달 매출에 생존을 건 영세 음식점이다.
눈에 보이는 비용 이전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더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파급효과다. 플랫폼은 수익성이 낮아진 음식점의 노출을 줄이고, 주문 가능성이 높거나 광고비를 낼 수 있는 대형 업체를 앞세울 수 있다. 소비자는 여전히 같은 앱을 연다고 느끼지만, 화면 속 기회는 이미 달라져 있다. 영세 음식점은 수수료 부담을 조금 덜었는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주문 기회’를 잃는다. 보호하려던 대상이 손해를 보는 역설이 이렇게 완성된다.
이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실제로 미국 여러 도시와 주의 배달 수수료 상한제를 분석한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규제가 지원하려던 중소 식당의 주문과 매출이 오히려 줄고 대형 식당의 주문과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규제로 생긴 비용은 결코 증발하지 않는다.
획일적 지급기한 단축과 과징금 인상이 부를 위축 효과
대금을 더 빨리 주게 하자는 규제도 같은 함정을 안고 있다. 납품업체와 판매자가 물건값을 빨리 받게 하자는 취지는 선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지급기한을 모든 거래에 똑같이 짧게 적용하면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플랫폼·유통·원청업체는 그만큼 큰돈을 한꺼번에 마련해야 한다. 이들은 자금 부담이 커지면 발주를 줄이고, 나아가 규제에서 벗어난 대형 거래처를 선호하게 된다. 결국 일감이 줄어든 중소 납품·입점업체의 손해로 귀결된다.
실제로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기업 간 거래의 대금 지급기한을 30일로 제한하려고 했지만, 유럽의회 논의 과정에서 합의가 있는 경우는 60일, 계절상품이나 회전이 느린 상품은 120일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그마저도 막대한 추가 자금 부담과 회원국의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제재를 무겁게 하는 규제도 다르지 않다. 최근 과징금을 높이자는 논의가 이어진다. 기업을 더 세게 벌하면 위법행위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다. 그런데 과징금을 일률적으로 높이면 시장에 미치는 폐해나 경제적 손실이 경미한 위반 행위에 대해서까지 막대한 금전적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과징금과 규제 리스크가 커지면 기업은 새로운 중소 거래처보다 검증된 대형 거래처를 선호한다. 기업 내부의 담당자 입장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자칫 향후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작은 파트너와 거래하는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내부 승인 절차를 통과하기 쉬운 안전한 거래를 택할 유인이 커진다. 결국 중소사업자를 보호하겠다는 규제가 오히려 이들을 시장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규제는 선의가 아니라 정확한 근거에 기초해야 한다
오해는 없어야 한다. 규제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힘의 불균형을 악용하는 이른바 ‘갑질’은 단호히 막아야 한다. 판매대금 보호장치도 필요하고, 반복적·고의적 위반에는 강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다만 규제를 강화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점들이 있다. 그 규제 비용이 시장의 어느 쪽 가격을 어떻게 바꾸는지, 최종적으로 비용이 어떻게 분담될 것인지, 기업은 거래를 늘릴 것인지, 줄일 것인지, 보호하려던 약자가 오히려 시장에서 배제될 우려는 없는지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가르는 것은 강도가 아니라 정확도다. 강할수록 정의로운 것도, 셀수록 약자에게 이로운 것도 아니다. 시장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지키려던 약자의 등을 떠미는 결과로 돌아온다. 공정거래 규제의 목적은 누군가를 더 세게 벌하는 데 있지 않다. 약자라도 공정하고 자유롭게 경쟁하며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하는 데 있다. 물론 정교한 설계에는 시간과 데이터가 든다. 그러나 잘못 설계된 규제가 약자에게 남기는 상처는 그보다 훨씬 오래간다.
※ 본 기고문은 필자의 2025년 8월 플랫폼법정책학회 토론문과 2026년 2월 한국유통법학회 발제문을 일부 발췌 및 수정하여 작성하였습니다.
[BKL 공정거래리포트]에서는 변화하는 경쟁법 환경 속에서 기업이 직면하는 주요 규제 이슈, 공정거래 정책 동향, 주요 판례와 조사 사례를 분석하고 기업 경영과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사점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박성진 변호사는 건설, 유통, IT,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에서 기업결합, 담합, 시장지배적지위나 거래상지위의 남용 및 기타 공정거래 분야 특별법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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