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형준]‘민정수석 잔혹사’… 되풀이 안 되려면

14 hours ago 4

황형준 정치부 차장

황형준 정치부 차장
과거 정부에서 장관급을 지낸 인사 A 씨는 자신이 받았던 두 차례 인사 검증에 대해 “한 번은 어떻게 해서든 안 되게 하려는 것처럼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다음은 아주 부드러운 질문만 나왔다”고 말했다.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을 할 때 민정수석실에서 통상 200가지가 넘는 질문 사항을 1시간 넘게 물어보는데 두 차례 검증의 톤이 완전히 달랐다는 뜻이다. 첫 인사 검증 때는 대통령의 귀에 잘못된 정보가 들어간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해가 풀린 뒤 다음 개각에서 A 씨는 두 번째 인사 검증을 거쳐 장관급 후보자로 지명됐고 인사청문회도 무사히 통과했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이 인사에 대해 긍정과 부정 중 어떤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검증의 칼날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오광수 전 민정수석 임명 과정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개연성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오 전 수석 임명을 의중에 둔 상태였고 특수부 검사 출신 등을 이유로 “부적절하다”는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나오자 직접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대통령의 의중이 드러난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오 전 수석에 대한 검증을 꼼꼼하게 했을 리 없다는 분석이 많다. 부동산 차명관리에 이어 추가로 15억 원대의 차명대출 의혹까지 불거지자 오 전 수석은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실은 오 전 수석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된 의혹들을 사전에 인지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의 첫 민정수석이 임명 닷새 만에 낙마하면서 ‘민정수석 잔혹사’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정수석 임기는 마쳤지만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의혹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를 포함해 강남 다주택을 끝내 처분하지 않고 물러난 김조원 전 수석,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둘러싼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으로 사표를 낸 신현수 전 수석, 아들의 입사지원서 논란으로 사퇴한 김진국 전 수석 등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아예 민정수석직을 폐지했지만 부활 후 임명된 김주현 전 민정수석은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법률 검토조차 하지 못했고 내란 혐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우병우 전 수석 역시 불법 사찰 등 직권남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총괄하며 사정 기능은 물론 공직 기강과 인사 검증 등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은 이른바 ‘칼날 위에 서 있는 자리’다. 대통령의 의사결정 과정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 권력을 잘못 휘두르다간 자신이 해를 입기 십상이다. 실제 역대 민정수석들은 민정수석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성을 충족하지 못했거나 갈등 조율 능력 부족, 권한 남용 등으로 큰 후과를 치렀다.

오 전 수석 사의 수용을 발표하며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의 사법개혁 의지와 국정철학을 깊이 이해하고 발맞춰 가는 인사로 조속한 시일 내에 차기 민정수석을 임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정수석 후보자에게는 높은 도덕성과 역량,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의 결정에 ‘레드팀’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강단 있는 성격과 소신이 필요하다. 사적인 인연이나 ‘국정철학’으로 포장된 ‘코드 인사’가 다시 민정수석으로 임명된다면 잔혹사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되풀이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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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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