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통신·금융 다 멈췄다…스페인 '최악의 대정전'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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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28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밤길을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28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밤길을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페인 전역과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일대,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28일(현지시간) 대규모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해 항공편이 취소되고 열차와 지하철이 멈추는 등 피해가 확산했다. 각국 정부가 원인 파악에 나선 가운데 일각에서 이상기후와 과도한 재생에너지 의존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로이터,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정전은 낮 12시32분께 갑작스럽게 발생했다. 이 여파로 교통과 업무 시스템이 마비됐고, 결제 시스템이 멈춰 식당과 카페 등이 문을 닫았다. 일부 병원도 업무를 중단했다. 포르투갈 국가전력망 운영사 REN은 스페인에서 4800만 명, 포르투갈에서 1050만 명 등이 정전으로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날 밤 12시 무렵 기자회견을 열어 “전력 공급의 50% 가까이가 복구됐다”고 말했다. 한국시간 29일 오후 5시 기준으론 전력이 대부분 복구됐다.

산체스 총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정전 원인을 분석 중”이라고 했다. 루이스 몬테네그로 포르투갈 총리는 “전체 상황은 이번 정전이 스페인에서 비롯됐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REN은 “스페인 내륙 지역의 급격한 기온 변화에 따른 ‘유도 대기 진동’이 초고압 전력선 진동을 일으켜 정전이 발생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영국 가디언은 60%가 넘는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의존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태양광과 풍력은 일조량이나 바람에 따라 전력 공급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전력망이 불안정하고 이것이 정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정전에 교통·통신·금융 마비…재생에너지 편중이 화 키웠나
대규모 블랙아웃, 왜?

< 기차역 올스톱 > 28일(현지시간) 정전이 발생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아토차 기차역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기차역 올스톱 > 28일(현지시간) 정전이 발생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아토차 기차역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페인 철도회사 렌페는 28일(현지시간) 낮 12시30분께 전국 모든 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3만5000명의 승객이 100여 편의 열차에 갇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밤 11시에도 11편의 열차에서 승객들이 구조를 기다렸다. 블랙아웃(대정전)으로 국가 기간망이 마비된 것이다.

◇도로·공항 폐쇄

< 기차역 올스톱 > 28일(현지시간) 정전이 발생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아토차 기차역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기차역 올스톱 > 28일(현지시간) 정전이 발생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아토차 기차역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페인은 이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정전 사태는 6시간 이상 지속됐다. 원인도 아직 불분명하다. 가디언,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전역의 수많은 도시에서 신호등이 작동을 멈췄다. 경찰이 급히 투입돼 수신호로 차량 흐름을 통제해야 했다. 스페인 교통당국(DGT)은 불필요한 차량 운행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했다. 마드리드의 M30 순환도로 터널 등 주요 도로는 안전을 위해 폐쇄됐다.

교통·통신·금융 다 멈췄다…스페인 '최악의 대정전' 비명

스페인의 관문인 마드리드 바라하스국제공항에도 외부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스페인공항공사(AENA)는 모든 공항이 예비 전력으로 계속 운영된다고 밝혔지만 일부 항공편은 지연이 불가피했다. 스페인 정부는 항공기 도착 편수를 평소보다 20% 줄였다.

통신망도 두절됐다. 음성 통화 연결은 어려웠고 일부 메신저 앱만 간헐적으로 작동했다. 글로벌 네트워크기업 클라우드플레어에 따르면 정전 직후 스페인의 인터넷 트래픽은 전주 같은 기간보다 약 60% 급감했다. 시민들은 정전 정보를 얻기 위해 배터리로 작동하는 라디오에 의존해야 했다.

슈퍼마켓과 주유소에는 연료와 비상식량을 사두려는 행렬이 이어졌다. 대부분 가게에서 카드 결제기가 작동하지 않아 현금이 없는 시민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은행 지점 앞에는 현금을 뽑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재생에너지 영향?

< 불꺼진 신호등 > 28일(현지시간) 대규모 정전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의 도로 신호등이 꺼져 자동차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불꺼진 신호등 > 28일(현지시간) 대규모 정전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의 도로 신호등이 꺼져 자동차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현지에선 정전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페인 정부가 추진하는 ‘넷제로’(탄소중립)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다. 스페인은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보급을 적극 추진했다.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기준 61%에 달했다. 정전이 발생한 시각인 낮 12시30분께는 햇빛이 강해 태양광 발전량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간대다. 이에 따라 전력망이 불안정해졌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는 전력을 일정하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망이 안정적이다. 전력 수요가 줄면 발전소 출력을 줄이거나 가동을 멈춰 공급을 줄이고, 수요가 늘면 중단된 발전기 가동을 재개해 공급을 조절하기 용이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일조량이나 바람의 세기 등이 불규칙해 전력 공급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이상기후가 원인일 수도

< 지하철 대혼란 > 대규모 정전 사고에서 전력이 복구되면서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지하철 운행이 부분 재개됐다. 플랫폼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승객으로 북적인다. /로이터연합뉴스

< 지하철 대혼란 > 대규모 정전 사고에서 전력이 복구되면서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지하철 운행이 부분 재개됐다. 플랫폼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승객으로 북적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상기후가 이번 정전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포르투갈 국가 전력망 운영사 REN은 “스페인의 극심한 온도 차이로 초고압 전력선에서 이상 진동이 발생했고 이런 영향으로 전력 시스템 간에 신호 전달 등이 이뤄지지 않아 정전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리적 요인으로 전력 복구가 지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에너지 섬’으로 불리는 이베리아반도에 있다. 독일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는 국가 간 전력망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한 나라에서 정전이 발생해도 다른 나라에서 전력을 끌어다 쓸 수 있다. 이베리아반도 지역은 다른 유럽 국가와 전력망 연결이 제한적이다. 피레네산맥이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거대한 자연 장벽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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