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역 휩쓰는 ‘휴대전화 사용 제한’
학생권리 침해 우려에도 규제 급증… 50개州중 26곳 법제화-8곳은 권고
일괄 제출-자율규제… 방식은 다양
“친구들과 대화할 시간 늘어” 호평 속… “비상시 소통 불가-행정부담” 우려도
이러한 기류를 반영하듯 켈리 암스트롱 노스다코다 주지사(공화)는 최근 교내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한 뒤 “대단한 승리”라고 자평했다. 또 “교사들이 원했고, 학부모들이 원했다. 교장 선생님들과 교육위원회 모두가 원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학교를 방문한 사실을 언급하며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탁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고 덧붙였다. 이 조치가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들을 부각하며 그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여전히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못 쓰게 하는 게 부적절하단 지적도 나온다. 근본적으로 ‘학생 권리 침해’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비상 상황 발생 시 부모와의 소통 문제, 전화 수거 등 시행 과정에서 학교가 짊어질 경제적 행정적 부담 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교내 휴대전화 금지 법안 쏟아져”
워싱턴 내 모든 공립학교에선 올해 가을부터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워싱턴교육청(DCPS) 차원에서 전체 공립학교를 대상으로 한 전화 사용 금지 지침이 이번에 마련된 것. 지역 내 일부 학교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휴대전화 제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루이스 페러비 DCPS 교육감은 이번 지침을 시행한 배경과 관련해 “우리 도시 전반에서 스마트폰 사용이 학교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연구에 따르면 휴대전화를 사용한 학생들이 그러지 않은 학생들보다 학습 성취도는 물론이고 실제 성적 자체도 낮았다는 것. 그는 휴대전화를 교실 밖으로 몰아내면 최근 미국 학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휴대전화를 활용한 ‘사이버 괴롭힘’ 역시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교내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른 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AP통신은 “다양한 주 의회에서 (교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 법안이 쏟아지듯 통과되고 있다”며 “이는 휴대전화가 아이들에게 해롭다는 광범위한 합의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다수의 교사와 학부모들은 휴대전화를 집중력 저하, 학습 방해 등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진단했다. 학생들이 종일 인터넷에 연결돼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는 의미다.휴대전화 사용이 학습 방해 수준을 넘어 학생의 정신 건강을 악화시킬 거란 우려도 적지 않다. 조지아주 하원의원인 스콧 힐턴(공화)은 휴대전화 사용 금지 법안을 두고 “단순히 학업 관련 법안이 아닌 ‘정신건강법’이자 ‘공공안전법’”이라고 강조했다. 학교에서까지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학생들은 고립, 외로움 등에 취약해져 정서적 결핍에 시달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문제의식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자 교내 휴대전화 사용 금지 규정 자체도 엄격해지는 추세다. 처음엔 수업 시간 동안만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지만, 이젠 수업 전후와 점심시간을 포함한 모든 교내 시간 동안 사용 금지로 적용 폭을 넓힌 주가 많아졌다.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한 대부분 주에선 전화기뿐 아니라 스마트워치와 노트북 등 ‘개인 전자통신기기’ 지체에 대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 지역마다 제한 방식 달라… ‘잠금 파우치’ 보관도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방식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일부 지역에선 학생들이 전화를 지닐 수는 있지만, 개인적인 통화·문자 금지를 요구한다. 전원을 꺼서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두도록 하는 곳도 있다. 아예 학교에 있는 내내 별도의 자석장치로만 여닫을 수 있는 ‘잠금 파우치’나 사물함 등에 휴대전화를 보관하도록 강제하는 지역도 늘고 있다.
다만 일부 학생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 학생은 “어차피 휴대전화를 갖고 있어도 수업 시간에 그걸 보는 애들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그냥 우리를 못 믿어서 (휴대전화를) 못 쓰게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휴대전화 사용 제한에 직접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루이지애나주의 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휴대전화 금지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까지 시작했다.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보다는 학교가 책임 있는 사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존중과 자기 규제 문화부터 형성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교 총격 사건 등 비상 상황 발생 가능성을 걱정한다. 그럴 때 휴대전화를 못 꺼내면 가족 간 연락이 힘들어 신속하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 의료 목적 등 사용 허가하기도
이처럼 휴대전화 사용 제한 조치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 만큼 휴대전화를 금지하더라도 예외 조항을 두는 학교가 많다.
일단 다국어를 사용하는 학생이 수업 자료를 번역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건 대부분 허용하고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 교사가 교육 목적으로 기기 사용을 허용한 경우엔 번역 장치 사용이 예외로 인정된다. 학생이 장애가 있거나 특별한 의료 목적이 있는 경우에도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사용을 대부분 허용하고 있다. 또 그 지역 사회 특성에 맞게 휴대전화 제한 정책을 일부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끔 유연성을 보장받은 학교들도 있다.
교내 총기 사건 등 ‘긴급 상황’ 때 연락 두절 가능성에 대해선 교육 당국이 어떻게 보고 있을까. 페러비 교육감은 이 같은 위기 상황이 충분히 잘 관리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학교가 비상 상황 발생 시 문자메시지, 자동 전화 알림, 이메일 등을 통해 학부모와 소통하도록 돼 있다는 것. 그는 “학생들이 비상 상황에서 학교 직원과 어른들 지시에 따르지 않고 휴대전화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오히려 위험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위급할 땐 휴대전화로 학생과 부모 간 긴급 소통이 꼭 필요하단 지적도 여전히 제기된다. 이에 일부 지역에선 학교가 휴대전화를 통제하더라도 긴급 상황에선 학생이 휴대전화를 쉽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학생이 부모와 교신 가능하도록, 휴대전화가 안 된다면 다른 대체 통신 방법을 마련하도록 법으로 요구하는 곳도 있다.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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