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실패가 한국에 주는 교훈
첨단산업 정밀지원 서두르고
원전 확충 등 에너지 자립을
독일이 당면한 경기 침체와 혁신 정체는 오랫동안 산업 구조와 정책 기조의 한계가 누적된 구조적 문제이며, 독일의 전철을 뒤따르지 않으려면 한국은 규제 혁파와 전략적 산업정책 추진을 병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문우식 서울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는 "글로벌 시장은 중국의 부상으로 규제가 효과를 잃는 '바닥을 향한 경쟁(Race to bottom)'의 장이 됐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독일과 한국 정부가 과거의 관행에 갇혀 규제에 나서면 기업들은 경쟁을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들이 정부 보조금과 규제 최소화를 무기로 세계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도 경쟁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독일은 최근 몇 년 동안 자동차와 배터리 등 핵심 분야에서 산업 생태계를 충분히 마련해 놓지 않고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 없이 기후변화 규제를 밀어붙여 중국에 주요 산업을 다 넘겨줬다"며 "우리나라도 독일의 잘못을 반복할 경우 미래산업에서 중국을 이길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식 침체를 피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에 충실하면서, 시장 변화에 따라 언제든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고 문 교수는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정부 정책 담당자들이 종종 글로벌 시장에서 자국 기업이 중국이라는 강력한 상대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규제를 내놓는 것 같다"며 "정책 담당자의 야망이나 국내 유권자들의 민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독일이 20년 넘게 '산업정책'이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며 재정 건전성에만 집착하다 혁신 기회를 놓친 점도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계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독일은 '산업부'조차 없을 정도로 정책 개입을 꺼려왔지만, 최근에야 부랴부랴 재정 확대와 신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며 "반면 한국은 산업통상부를 중심으로 정책 기반을 유지해왔지만, 오랜 기간 대규모 산업정책을 시행하지 않아 역량이 약화됐다"고 진단했다.
김 연구원은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하이테크 부상을 위해 어떤 섹터를 선별해 지원하고, 어떻게 평가할지가 관건"이라며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한국이 가진 전략 자산을 무기로 서구 공급망 재편의 허브 역할을 수행한다면, 과거 독일과 일본이 점했던 산업 패권을 한국이 가져올 기회도 열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 독일이 서로 협력하는 것도 위기 극복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독일 모두 단독 생존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AI 기반 로봇, 차세대 2차전지, 수소 에너지 등에서 공동 연구개발과 투자 연계를 통한 유럽 시장 공동 진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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