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고착되자 정부가 국민연금을 외환수급 논쟁의 중심에 세웠다. 해외투자 규모가 800조원에 육박하고 연간 수십조원의 달러 매수가 반복되는 만큼, 국민연금이 환율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에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과거 수출·수입 결제가 중심이던 외환시장은 이제 국민연금·기관·개인의 해외투자가 만들어내는 ‘상시적 달러 수요’의 영향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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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그러나 국민연금을 고환율의 주범으로 지목하거나, 더 나아가 환율 관리를 위해 연금 운용을 조정하자는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다. 최근 환율을 밀어올린 핵심 요인은 미국과의 금리차 확대, 글로벌 달러 수요 증가, 기업들의 대규모 해외투자 등 근본적인 거시 변수들이다. 문제의 본질을 제쳐둔 채 연금을 움직여 해결해보려는 논리는 정책적 책임 회피에 가깝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정부가 환율 논의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을 반복적으로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외환시장 대응 브리핑에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금운용지침 제4조에 명시된 6대 원칙 가운데 공공성·유동성·안정성·수익성만을 선별적으로 부각했다. 그러나 정작 운용 원칙 중 핵심 축인 ‘지속가능성’과 ‘운용 독립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국민연금 운용 원칙의 일부만 끌어다 연금이 ‘국가경제를 감안해 움직여야 한다’는 방향으로 해석을 시도하려는 경향이 엿보인다.
기금의 공공성이란 시장 충격을 줄이고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라는 의미이지, 정부 정책의 빈틈을 보완하라는 취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연금의 원칙을 필요에 따라 선택적·편의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국민연금은 투자기관이 아닌 정책수단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가입자의 노후자금을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연금의 자산배분과 운용 전략은 수십 년에 걸친 복리 구조를 전제로 설계되고, 그 결과는 미래 세대의 보험료와 급여 수준에 직결된다. 이런 장기 구조를 두고 단기적 환율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이유로 연금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 비용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낮아진 수익률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환율 불안 국면에 국민연금의 ‘뉴 프레임워크’ 마련을 언급하는 그 자체가 위험한 신호다. 기금운용지침의 원칙들은 가입자의 노후자산 보호라는 명확한 목표 아래 장기간 축적된 철학과 제도적 장치 위에 설계된 것이다. 이를 정부의 정책적 편의에 맞게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연금의 운용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필요할 때마다 연금을 정책수단으로 동원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힌다. 새로운 틀이 형성되는 순간 정치·경제 상황에 따라 원칙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가 고착되고, 이는 기금의 장기 수익률과 지속가능성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개입이 반복될 가능성이다. 외환 불안이 생길 때마다 연금의 자산배분을 조정하는 방식이 관행화되면 기금의 안정적 운용 기반은 서서히 침식될 수밖에 없다. 미래 세대의 노후자금을 당겨 현재의 환율 불안을 덜어내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그 어떤 정책적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정부 입장에서 1400조 국민연금은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손 대고 싶은 유혹이 생길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의 국민연금 역할론을 날카롭게 경계해야한다. 환율 급등의 원인이 글로벌 거시 경제 영향이 큰 만큼 해법은 외환시장 인프라 개선, 기업 외화 유턴 구조 마련 등 근본적 영역에서 찾아야한다. 연금을 활용하기 쉽게 운용지침을 건드리거나, 통제하는 식으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은 시장 변동성을 흡수하는 완충 장치가 아니라 국민의 노후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다. 이 보루를 손쉬운 정책 대안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비용은 현재의 안정이 아니라 미래 세대의 손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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