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주 핵실험장에서 강원 홍천까지… 선도농업인 꿈꾸는 33세 탈북 여성 농부[주성하의 북에서 온 이웃]

1 week ago 24

강원 홍천군에 영농인으로 정착한 장진희 씨가 지난달 전주시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열린 ‘여성 농업인 농기계 챌린지’에 참가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장진희 씨 제공 쿵~. 2006년 10월 9일 오전 10시 35분. 골짜기를 따라 메아리친 묵직한 소리가 함북 길주군 모든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땅이나 건물이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13세이던 장진희 씨는 길주 장마당에서 약을 팔던 아주머니 가게에서 보따리를 들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소리에 놀라 가게 밖으로 뛰쳐나오니 다들 밖에 나와 무슨 일인지 몰라 서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지진인가?” “어디서 대포를 쏜 건가?”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장마당은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평소대로 돌아갔다. 북한 첫 핵실험이 수십 km 떨어진 풍계리에서 진행됐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한 시간 뒤 북한 TV에선 핵실험 성공을 알리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길주 사람들은 여전히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북한이 핵실험 장소를 공개하지 않기도 했지만, 늘 정전인지라 TV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핵실험을 했는지도 몰랐다.핵실험 장소가 길주라는 사실은 한참 지나 입소문으로 알려졌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핵물질이 몸에 나쁘다는 것도 몰랐다. 발밑에서 핵실험이 진행됐다는 것보다는 오늘 가마솥에 넣을 것을 구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당시는 쌀값이 무섭게 폭등해서 민심이 흉흉했기에 보위부와 안전부에서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던 때였다. 괜히 나랏일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들다가 꼬투리 잡혀 끌려가고 싶지는 않았다.장 씨 역시 핵실험에 관심도 없었다. 길주 아이들에겐 장마당에서 일감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누구는 빵집에서 일했고 누구는 가구 제작소에서 판자를 연마했으며 누구는 손수레를 밀었다. 장 씨도 어머니를 도와 뭐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장진희 씨가 지난달 팀을 이뤄 참가한 농촌진흥청 주관 여성 농업인 농기계 챌린지에서 동상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장진희 씨 제공 ● 어린 마음에 스며든 중국1993년 장 씨가 태어났을 땐 집안이 그리 가난하지 않았다. 부모와 함께 일본에서 북송선을 타고 온 귀국자 출신 장 씨 아버지는 당국에서 시키는 대로 길주에 정착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 길주에서도 많이 굶어 죽었지만, 장 씨네는 일본 사는 아버지 친척들 덕분에 풍족하진 않아도 밥은 먹고 살았다.장 씨 인생에서 가장 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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