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예술에 대한 고민이 발레 소설로 이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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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톨스토이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주혜가 17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밤새들의 도시>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집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다산북스 제공

지난해 톨스토이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주혜가 17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밤새들의 도시>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집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다산북스 제공

“새 소설은 한마디로 ‘예술과 예술가 간 사랑 이야기’입니다.”

데뷔작 <작은 땅의 야수들>로 지난해 러시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톨스토이문학상(야스나야 폴랴나상)을 받은 소설가 김주혜는 17일 두 번째 장편소설 <밤새들의 도시>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영국 런던에 거주 중인 그는 서울국제도서전을 계기로 방한했다.

새 소설의 주요 소재는 발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발레리나의 좌절과 환희를 그렸다. 미국 출판사 편집장이 ‘발레 소설은 팔리지 않는다’고 만류했지만 발레는 그에게 ‘예술’ 그 자체다. 어려서 발레를 배웠다는 김 작가는 “발레와 클래식 음악은 늘 안식처이자 뜨거운 열망이었다”며 “발레리나에게는 예술을 위한 비합리적 희생과 열정이 필요하고, 문학에 느끼는 제 영감과 희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 작가는 한국 밖에서 영어로 소설을 쓰지만 자신을 ‘한국인 소설가’로 칭했다. 그는 “스스로를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가 아니라 한국인 소설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987년 인천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아홉 살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프린스턴대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한 데뷔작 <작은 땅의 야수들>은 미국에서 영어로 먼저 출간됐다.

김 작가는 2시간 남짓 이어진 기자 간담회를 한국어로 소화하며 “이번 소설 한국어판 번역을 직접 검토했고, 한 글자 한 글자 단어의 맛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작품 속에 어느 건물 입구 양쪽 가스 제등이 불타는 모습을 묘사한 문장이 있어요. 저는 한국어판에 ‘훨훨’을 넣어달라고 요청했어요. 훨훨은 특이하게 불, 새, 춤을 모두 묘사하는 단어예요. 작품의 핵심인 춤과 비상, 불꽃을 한꺼번에 드러내죠.”

그는 “한국어는 문학적 언어”라고 표현했다. 의성어, 의태어가 풍부한 한국어는 사물을 사람에 비유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학적이라고 봤다. “영어는 구조상 문장을 길게 쓸 수 있고 긴 호흡의 문학 작품을 쓰게 하는데 한국어는 메타포(상징)적 성질이 강합니다.”

첫 소설로 ‘뿌리’를 탐구한 그는 새 소설에 ‘예술가로서의 고민’을 담아냈다. 첫 소설로 호평받았지만 ‘전쟁과 기아로 인류가 고통받는데 한가하게 소설을 쓰고 있는 게 맞나?’ 고민했다고. <밤새들의 도시> 집필 과정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해 러시아 현지 자료 조사가 무산되기도 했다.

김 작가는 클래식에 얽힌 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런던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3번을 듣고 감동했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형광등에 갇힌 파리를 봤다. ‘나는 천상의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사치를 누리는데, 저 파리는 파리로 태어난 것도 부족해 유리 안에 갇혀 사는 구나.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예술은 사치를 누리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모든 생명, 타인에게 마음을 열 수 있게 합니다. 아름다움을 겪으면 그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어지니까요. 그래서 예술은 전쟁과 양극화의 시대인 지금 더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전작이 교향곡이라면 새 소설은 협주곡”이라고 자평했다. 3인칭 시점으로 격랑의 시대 속 여러 인물을 다룬 <작은 땅의 야수들>은 안톤 부르크너 8번 교향곡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는데, 예술가 한 명의 내면에 집중한 이번 작품은 솔리스트가 전면에 나서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모델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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