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도피 조력’ 응하면
도피 교사·방조죄 처벌 가능
대법관 8대 5로 판례 유지
소수의견 “도피방조=방어권”
음주운전자의 동승자가 ‘운전자 바꿔치기’를 제안했을 때 이에 응한 운전자는 범인도피 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범인이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방어권 차원에서 처벌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가짜 범인’으로 내세우는 행위는 범인도피 교사·방조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기존 법리가 유지됐다.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과 범인도피 방조 혐의로 기소도니 전직 경찰관 A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23년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자택에서 음주 상태로 운전을 시작해 인근 도로에서 신호 대기 중인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A씨는 교통단속 경찰관이었다.
사고가 나자 동승자 B씨가 ‘내가 운전한 것으로 해주겠다’고 제안했고, A씨는 이에 응해 자리를 바꿨다. A씨는 보험회사에도 B씨가 차를 운전했다고 전화했다. 출동한 경찰관은 A씨가 아닌 B씨에게 음주측정을 진행했다.
이들의 범행은 경찰이 복귀한 뒤 이상함을 느낀 보험회사 직원의 신고로 발각됐다. A씨의 당시 혈중알코올 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097%였다.
재판에서 쟁점은 범인이 자신을 위해 타인이 허위 자백(범인도피)을 할 때, 이를 촉진하거나 부추기면 이를 범인도피 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였다. 법원은 범인이 허위 자백을 시키면 범인도피 교사죄로, 제3자의 허위 자백 제안에 응하면 범인도피 방조죄로 각각 처벌해왔다.
1·2심은 모두 범인도피 방조죄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A씨는 이 사건으로 경찰에서 해임됐다. 범인인 척 거짓 자백한 B씨는 범인도피죄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대법관 4명으로 이뤄진 소부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회부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8명의 다수의견으로 범인도피 방조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재확인했다.
이들은 “대법원은 그동안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를 방어권 범위 내의 것으로 봐 범인도피죄로 처벌하지 않으면서, 범인이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 자백을 하게 하거나 타인의 허위 자백을 촉진·강화 또는 용이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를 하면 방어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고 범인도피 교사·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태도를 유지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는 허위 범인에게 수사력이 집중되는 등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크고,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와 달리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의 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수의견 8명은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는 범인 자신의 가담 형태가 교사와 방조 어느 쪽에 해당하더라도 방어권 남용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는 동일한 범주에 속한다”며 “방조에 대해 ‘방어권 남용 법리’를 배제하면 방조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결국 가벌성이 높은 범인도피 교사 행위까지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소수의견 5명(이흥구·오경미·서경환·권영준·박영재)은 “형법상 범인도피죄는 범인을 비호하는 ‘범인도피죄 본범’을 처벌하는 규정일 뿐, 스스로 도피행위를 한 범인을 처벌하는 규정이 아니다”고 했다.
이들은 “범인의 방조행위는 교사행위와 달리 타인을 타락시키거나 새로운 범죄자를 창출하는 행위 반(反)가치가 없다”며 “범인이 범인도피죄 본범을 돕는 것은 자기방어와 이익을 위한 인간 본성에 따른 자기도피 행위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범인이 자신을 도피시키려는 이를 돕는 행위는 결국 범인 스스로 도피하기 위함이므로 이는 방어권 행사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도피를 종용하는 ‘교사’와 달리 타인의 제안에 응한 것이므로 타인의 불법을 유발하는 것도 아니라는 해석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처음으로 범인도피죄와 관련해 방어권 남용 법리의 의의와 취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현재의 판례 법리가 여전히 타당함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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