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장갑 일반 쓰레기로 버렸다고 벌금 10만 원? 어떻게 생각하세요?”
4월 초 서울 강남구에 사는 A 씨는 자신의 SNS(스레드)에 황당한 경험을 공유했다. 고무장갑을 ‘특수 규격 봉투’(PP)에 넣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를 물었다는 것. 하지만 이는 서울시에서 안내하는 분리배출 기본 방침과 달라 억울하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특수 규격 봉투’는 종량제 봉투에 담기 어려운 대형 생활 폐기물 등을 배출할 때 사용하는 봉투다. 일반적으로 PP(폴리프로필렌) 재질, 일명 ‘마대 자루’로 제작돼 있다.
서울시의 대부분 자치구에서는 고무장갑을 일반 종량제 봉투에 담아 일반 쓰레기로 버리도록 안내하고 있지만, 강남구만 PP 봉투에 넣어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A 씨의 사례 이후 SNS에는 “귤껍질 버렸다가 8만 원”, “닭 뼈에 살점 남았다고 10만 원” 등 여러 지역에서 올라온 생활 쓰레기 과태료 사례가 공유되며 시민들의 불만이 이어졌다. 누리꾼 불만의 근본 원인은 지역마다 분리배출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강남구청은 동아닷컴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을 통해 “재활용품 배출 요령은 기본적으로 환경부의 지침을 따르나, 각 시군구의 여건을 고려해 분리수거 품목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마다 재활용 품목 처리 능력이나 재활용 선별장 설치 여부가 다르기 때문에 쓰레기 배출 방법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포상금 노린 ‘쓰파라치’ 진짜있나?
논란은 ‘누가 어떻게 단속하느냐’로 옮겨갔다. 최근 스레드에는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쓴 사람이 쓰레기를 뒤지는 영상이 퍼지며 “포상금 노린 쓰레기 파파라치(일명 쓰파라치)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한 누리꾼은 ‘분리배출 위반 과태료 고지서’를 올리며 “집중 단속 기간에 포상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개봉해 검사한다”는 주장을 폈다.실제로 2000년대 초 환경부는 신고 포상금제를 도입해 쓰레기 무단투기 신고를 권고했다. 그러자 포상금을 노리고 다른 지역까지 원정 신고를 다니거나 위반 사례를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이른바 ‘쓰파라치’ 가 생겨 난 바 있다. 이들이 사생활 침해 및 주민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어 제도의 순수성이 훼손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취재진이 실태를 확인해본 결과 이 역시 지역마다 상이했다. 강남구, 서초구 등은 ‘쓰레기 무단투기’에 대한 포상금제는 운용하고 있었지만, 논란이 됐던 ‘혼합 배출’에 관한 포상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논란이 됐던 영상 속 사람은 구청 소속의 단속원으로 포상금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혼합 배출’에 대한 포상금제를 운용하고 있었다.
대개는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한 무단투기 단속원이 단속하지만, 문제는 단속 행위의 주체가 위탁 인력에 한정되지 않고, 일반 시민까지 확대됐다는 점이다.
일부 지역에선 포상금을 노리고 위반 장면을 여러 건 신고하거나 심지어 직접 봉투를 열어 뒤지는 시민이 생겨났다.이와 관련해 강남구청 관계자는 “이번 단속은 오배출에 대한 징벌이 목적이 아니라, 2026년부터 수도권 3개 시도에서 시행되는 종량제 폐기물 직매립 금지 조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조치”라며 “당사자의 확인을 거쳐 오해가 없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정책의 취지를 이해하고 올바른 배출 문화를 형성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쓰레기 속 영수증 ‘뒤적’…개인정보 침해 괜찮을까?
종량제 봉투를 뒤져 개인정보를 통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단속 방식은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하지만 단속 지자체로서는 위반자를 특정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종량제 봉투 실명제가 아니다. 특히 아파트 단지에서 불특정 배출된 것에 대해 (위반자를) 특정할 만한 수단이 영수증 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쓰레기 속에서 개인정보가 담긴 영수증 등을 확인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에 따라, 공공기관이 소관 업무를 수행하는데 불가피한 경우 수집이 허용된다는 조항에 근거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포상금을 받기 위해 쓰레기 속 영수증을 뒤지는 경우는 법률적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주거환경학회 부회장 김재식 변호사는 “공공기관이 아닌 일반인이 쓰레기 봉투를 열어 개인정보를 확인하고 신고할 경우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는 ‘공공기관이 소관 업무 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만 개인정보 수집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단속 주체가 일반 시민일 경우 이런 행위는 법적 위반 소지가 있다는 해석이다.
또한 시간제 단속원이 이를 수행하는 경우도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위한 계약이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우려된다고 김 변호사는 말했다.
서울시, 구별 배출 기준 통일하는 ‘표준안’ 마련
동아닷컴 취재가 시작되고 약 1주일 후, 서울시는 ‘재활용 비해당품목 배출기준안’ 기준안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현장 안내에 나섰다.
17일 서울시는 “(그동안)재활용품은 환경부 지침에 따라 분류했으나, 일부 예외 품목 처리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혼선을 빚어왔다”며 “이에 서울시는 자치구마다 제각각이었던 ‘재활용이 어려운 품목’ 배출기준을 통일하는 표준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시는 불연성 여부, 크기, 위험성, 소각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분리배출 기준을 통일하고, 최근 SNS에서 논란이 된 ‘혼란 품목’ 60여 개를 선정해 배출 요령을 제시했다.
표준안에 따르면, 소각이 불가능한 폐기물은 특수 규격마대에 담아 배출해야 하며, 깨진 유리나 형광등처럼 위험성이 있는 품목은 신문지로 포장해 종량제봉투에 배출해야 한다.
또한 여행용 가방, 유모차, 보행기 등 부피가 큰 품목은 대형폐기물로 신고·배출해야 한다.
서울시는 이번 표준안을 바탕으로 각 자치구 조례에도 ‘배출 기준’ 조항을 반영할 방침이다. 현재 조례상 잘못 명시된 항목은 각 자치구에서 순차적으로 정비에 나선다.
최근 ‘고무장갑 재활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불거졌던 강남구는, 조례 개정을 통해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다. 강남구는 8월 구의회 상정을 목표로, 이달 내 관련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정확한 품목별 배출 기준은 ‘내 손안의 분리배출’ 모바일 앱과 각 자치구 환경·청소 분야 홈페이지 메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권민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은 “앞으로도 시민 눈높이에 맞는 안내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제도 개선을 통해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재활용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재활용 비해당 품목 배출 요령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황수영·노희주·김영호·김아영 인턴기자 dn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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