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1억을 어디서 구해요"…새 아파트 들어가려다 '비명'

3 weeks ago 13

서울 여의도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김범준 기자

서울 여의도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김범준 기자

재건축의 '대못'으로 불리던 안전진단이 폐지 수준으로 완화된다. 정부는 제도 개선으로 재건축이 활성화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남은 규제로 인해 큰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안전진단 폐지 수준 완화…제도 개선에 재건축 '3년 단축' 효과

2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내달 4일부터 안전진단 제도 개편을 위한 도시정비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 절차를 밟도록 하는 '재건축 패스트트랙' 법안이다. 기존에는 안전진단에서 재건축이 가능한 등급을 받아야 정비계획 입안과 정비구역 지정 등 재건축 절차를 밟을 수 있었지만, 약 일주일 뒤부터는 준공 30년 이상 아파트를 대상으로 주민이 원하면 안전진단을 받지 않고도 조합 설립 등 재건축 후속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안전진단 명칭도 재건축진단으로 바뀌고, 현지 조사 절차는 폐지된다. 다만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는 사업 시행계획인가 전까지 안전진단을 통과해야 한다. 이미 △주민공동시설 △지하 주차장 △녹지환경 △승강기 등을 주거환경 평가 항목으로 추가했고, 전체 평가에서 주거환경 비중도 40%로 높였기에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는 평가다.

이달 1일부터는 정비사업 동의율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도정법 개정안도 시행됐다. 재건축 조합 설립 동의율이 75%에서 70%로 낮아졌고, 토지 면적 기준도 70% 이상 확보하면 조합 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다. 동별(복리시설 포함) 소유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하던 것도 복리시설(상가)에 대해서는 소유자의 3분의 1 이상으로 완화됐다.

정부는 규제 완화로 재건축 기간이 최대 3년 단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 비중이 큰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등에서 재건축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재건축 추진위원회 설립 이전에 이뤄지는 안전진단으로 인해 주민들이 수억원에 달하는 안전진단 비용을 십시일반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컸던 탓이다.

"공사비 올라 어려운데 억대 부담금까지 감당되겠나" 한숨

수도권의 한 아파트 단지에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수도권의 한 아파트 단지에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하지만 수도권 곳곳의 노후 아파트에서는 재건축 패스트트랙에 대한 기대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루가 멀다고 치솟는 공사비로 인해 사업성이 악화한 데다, 재건축 이후 부담해야 할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에 대한 걱정도 커진 탓이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안전진단이 시간과 비용을 많이 잡아먹던 것은 사실인 만큼 재건축 속도가 빨라질 순 있을 것"이라면서도 "당장은 사업성 문제가 커져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분담금이 늘었고, 일부 지자체에서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 부과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서 사업에 마냥 속도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30% 급등했다. 2020년 100을 기준으로 △2021년 117.37 △2022년 125.70 △2023년 129.34 △2024년 130.05로 가파른 상승을 거듭했고, 올해 3월 기준으로는 131.23까지 뛰었다.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 부과가 본격화한 것도 재건축 조합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는 재건축을 통해 얻는 이익이 조합원 1인당 8000만원을 넘으면 초과 금액의 최대 절반을 환수하는 제도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가 부담금 부과를 위한 서류 제출을 대상 조합에 요청하는 등 관련 행정절차를 시작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사진=김범준 기자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사진=김범준 기자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재건축 부담금이 부과되는 단지는 전국 총 68개 단지에 달한다. 조합원 1인당 평균 약 1억원가량 부과될 것으로 국토부는 예상했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부터 박근혜 정부까지인 2012년~2017년 관리처분 인가받은 단지는 특례 조치를 통해 면제됐지만, 문재인 정부부터 관리처분 인가받은 단지가 차츰 준공되면서 부담금 부과가 본격화하는 셈이다.

이에 지난달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는 재초환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에 5만명이 넘게 몰렸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도 "재초환은 민간 정비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재건축을 통해 과도한 이익을 누리는 것은 사회 공공을 위해 환원돼야 한다"며 현상 유지를 지지하고 있어 시장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활성화를 통해 도심 주택 공급을 늘리려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목표를 재건축 등 정비사업 활성화로 잡았다면 장기적으로 재초환을 폐지해야 한다"며 "가뜩이나 공사비로 오른 분담금도 부담스러운 상황에 억대 부담금까지 부과하면 (재건축이 활성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제언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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