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서울 회현동에 설립된 대한오브세트잉크는 ‘노루페인트’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산업화에 색을 입혔다. 창업주인 한정대 회장은 해방 직후 원료 수급조차 어려운 시기에 근대적 생산체제를 구축하며 도료 사업으로 확장을 이뤘다. 노루페인트의 기술 독립성과 품질 철학의 뿌리다.
노루페인트는 주거공간부터 미래차, 2차전지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에 ‘색’이라는 가치를 입히며 함께 성장해왔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정부의 수출 중심 정책에 발맞춰 사업 다각화와 기술 고도화를 추진하며 외형을 크게 확장했다. 1974년 국무총리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하며 국가 산업 발전의 동반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 경제위기 ‘격랑’에서 급성장
1970년대 요일쇼크, 1990년대 외환위기, 2000년대 금융위기 등 위기 속에서도 노루페인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첨단 연구소를 세우고 사업을 다각화해 신공장을 가동하며 연구개발(R&D)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품질 관리와 생산 체계를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중국 자금성 보수 프로젝트에 도료를 공급하는 등 해외 시장 진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00년대 한영재 회장의 리더십으로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전사적 안전·환경 경영을 도입하며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러한 전략은 노루페인트를 글로벌 도료 기업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2010년대 노루페인트는 브랜드 통합 전략인 ‘NOROO WAY’를 수립했다. 팬톤(PANTONE)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글로벌 컬러 트렌드와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말레이시아, 중동, 인도, 튀르키예에 합작사를 설립하며 도료산업의 흐름을 선도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색’을 중심으로 기술력과 디자인 감성을 수출하는 전략을 펼쳤다.
◇ 컬러 감성, 밀라노에서 빛나다
노루페인트는 건축용 도료만을 제조하는 기업에 머물지 않는다. 2차전지, 항공·방위산업, 탄소 저감 도료 등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노루그룹 신기술·신제품 전시회’는 기술 혁신 성과를 공유하고,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전시회는 노루페인트가 지속 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집약적으로 보여준 현장이었다.
노루페인트는 ‘2024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참여해 브랜드 컬러 전시 콘텐츠 ‘홍철 원더랜드’를 선보였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이탈리아 밀라노에 모여 미래 디자인 트렌드를 공유하는 행사였다.
노루페인트는 컬러가 단순한 제품의 속성을 넘어 인간의 삶을 감각적으로 변화시키는 핵심 요소임을 강조했다. 색채 연구 역량과 독창적인 색감 미학을 내세웠다.
방송인 홍철과의 협업으로 꾸며진 ‘홍철 원더랜드’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결합한 체험형 전시로 젊은 관람객과 글로벌 미디어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노루페인트의 전시 참여는 디자인산업과 컬러 문화에 대한 노루의 철학이 국제무대에서도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 안양시와 50년 동행
1973년 경기 안양에 본사를 둔 이래 노루페인트는 50년 넘게 안양시와 호흡을 맞춰 사회공헌 활동을 실천해왔다.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130여 명의 임직원과 시민, 공무원이 함께 안양천 정화 활동을 벌였다.
창립기념일 땐 화환 대신 받은 쌀을 지역주민에게 기부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시민과 함께 걷는 파트너’란 구호 아래 노동조합이 주도하는 사랑의 손길 자선바자회 등도 진행했다.
노루페인트 창립 이후 80여 년은 기술 발전과 시장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색의 철학’이 만들어낸 결실이라는 게 자체 평가다. 노루페인트는 “산업과 사람, 공간과 감성 위에 색을 입혀온 노루페인트는 앞으로도 더 나은 내일을 칠하기 위한 붓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