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던 광주 따뜻한 연대]〈1〉 독일로 이어진 민주주의 염원
파독 광부-유학생 등 독일 교포 500명… 베를린서 학살성토대회 열고 시가행진
한독친선 결성 등 5·18 진상규명 촉구
45년째 민중제 개최하며 추모 이어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립된 광주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학살 중단, 신군부 퇴진을 외쳤던 해외 교포들이 있었다. 5·18 당시 독일, 미국, 일본 교포사회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정 전 회장은 13일 본보와 통화에서 “해외 교포들이 5·18 당시 한국의 민주주의를 바라는 집회를 가졌다는 것을 몰랐다. 광주는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5·18은 1987년 6월 항쟁과 2024년 12·3 비상계엄 상황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보루가 됐다. 해외 동포들은 5·18과 민주주의를 위한 따뜻한 연대를 45년째 이어가고 있다.
1980년 5월 22일 독일 제1공영방송은 광주에서 군인이 무자비하게 시민을 학살하는 비극을 처음 방영했다. 5·18 참상은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취재했다. 힌츠페터 기자는 독일 제1공영방송 ARD 산하 NDR의 일본 특파원이었다. 그는 신군부의 허락 없이 광주에 잠입해 신군부의 잔인한 시민 학살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에 알렸다. 신군부는 당시 언론을 통제해 국내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지 못했다.독일 동포들은 신군부의 학살을 알고 분노하며 서로 연락해 정보를 교환했다. 교포들은 방송 1주일 후인 5월 28일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투쟁하는 조국의 애국시민을 위한 재베를린 한국인 모임’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같은 날 프랑크푸르트 니콜라이 교회에서도 교포들이 모여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이 씨는 “신군부가 김대중 대통령을 사형에 처하려고 하자 세계에서 이를 막으려는 구명운동이 활발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1980년대 초 신군부가 김 대통령의 사형 집행 직전에 빌리 브란트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회의에서 세계 정치인들의 연명을 받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며 압박한 것이 큰 효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파독 광부 출신인 교포 선경석 씨(77)도 본 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1970년 초 베트남 백마부대 29연대 작전과 사병으로 근무했는데 연대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전 전 대통령은 사단장 앞에서 지휘봉을 흔들고 인명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2인 이상 집결 금지 지시를 무시하고 단체구보를 뛰게 할 정도로 독선적이었다. 사병들 사이에서 전 전 대통령의 무리한 자신감의 배경은 군대 사조직(하나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는 상관인 전 전 대통령을 미워하지 않았다.
선 씨는 5·18 뉴스를 보고 상관이던 전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쓴 편지는 “전 전 대통령 당신은 이제 장군도, 상관도 아니다. 빨리 퇴임해 민주주의를 되살리라” 등의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선 씨는 “편지를 5·18 직후 한국 육군본부로 보냈는데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교포사회는 5·18 직후 한독친선 등을 결성해 현지 교회들과 연대 속에 5월 진상 규명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교포들은 5·18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서신을 유엔 사무총장과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기도 했다. 독일과 유럽 교포들은 5·18이 되면 오월민중제 등을 개최하며 45년째 추모하고 있다. 독일 교포들은 2, 3세대들이 5·18을 알 수 있도록 따뜻한 연대가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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