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에서 11억 매출 일군 탈북 여성… 박은숙 해오름푸드 대표의 인생 [주성하의 북에서 온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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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착 18년 만에 모시떡으로 11개의 가맹점을 낸 박은숙 해오름푸드 대표. 지난달 14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3회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식. 이날 모범적인 정착으로 대통령 표창장 수여자로 호명된 이는 (주)해오름푸드 대표 박은숙 씨였다.“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영농 정착과 식품가공업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자립했으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북향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데 기여한 공로”라는 공적 내용만으론 그의 삶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대다수 탈북민이 그렇듯이, 박 씨 역시 굴곡 많은 인생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 19세 꽃다운 나이에 매일 12시간 넘게 20~30㎏의 돌 마대를 나르며 3년이란 청춘을 허비했던 그는, 돌이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 여수 돌산에 정착해 아름다운 모시꽃을 피워내고 있다.그가 태어난 북방의 도시 청진에서 남해안의 섬 돌산까진 직선거리로 800㎞가 넘는다. 집을 떠나 2000리 먼 길을 헤쳐 남해안 섬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 이제 돌산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 그의 ‘인생 나무’는 앞으로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일까. 여수 돌산에서 직접 모시 재배를 하고 있는 박 씨. ● 항상 배고프던 어린 시절박 씨는 1979년에 북한에서 ‘철의 도시’라고 불리는 함북 청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가정환경은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는 김일성정치대학을 졸업한 군관이었고, 어머니는 교사였다.하지만 12세 때 아버지가 종양이 생겨 제대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즈음 어머니도 교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주부로 살았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은 아버지 병을 고치느라 점점 더 거덜이 나기 시작했다.박 씨의 어린 시절 기억은 배고픔으로 기억된다. 청진은 북한에서도 일찍 배급이 중단된 도시다. 1990년대 초반에 노동자들의 배급을 제대로 주지 못했고,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0년대 중반 이전에 아사자들이 나왔던 도시였다.어머니는 세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찍 장사를 시작했다. 박 씨는 멀리 장사를 나가 며칠씩 들어오지 않는 어머니를 손꼽아 기다리며 배고픔을 달랬다.학교에 가면 교복을 입지 않은 학생들을 일으켜 세워 망신을 주었는데, 박 씨는 늘 맨 마지막까지 교복을 입지 못하는 여학생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학생 교복을 ‘국정 가격’으로 상점에서 팔았는데, 교복을 살 돈도 없었던 것이다. 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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