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혁신 이끄는 리사 수 AMD CEO
수는 어릴 때부터 엔지니어링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고등학생 때는 반도체칩에 깊은 흥미를 느껴 직접 납땜으로 회로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IBM 연구소에서 인턴십을 하며 반도체의 작동 원리를 직접 체험한 경험은 그의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어떤 분야에서,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분명히 인식하게 됐고,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은 보다 구체적인 목표로 이어졌다.
수의 부모는 딸이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반도체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입학하며 과감하게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전기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MIT에서 박사 학위까지 모두 취득했다. 그의 선택은 지금도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기술에 더해 조직문화 혁신까지
수는 취임 이후 강력한 리더십과 전략적인 판단으로 AMD를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특히 그는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에 집중하면서 ‘라이젠(Ryzen)’ 프로세서 라인과 ‘에픽(EPYC)’ 서버 프로세서를 출시해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를 통해 데이터센터와 게이밍 시장에서 AMD의 입지를 대폭 강화했다. 혁신적인 제품 출시로 AMD의 시장 점유율은 인텔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했고, 주가 또한 6월 현재 120달러대로 회사의 가치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렸다.
수는 단순한 기술 혁신에 그치지 않고 조직문화를 완전히 바꾸는 데에도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는 과거의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버리고, 다양한 인재들이 창의적이고 협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부서 간 긴밀한 협업을 촉진하고 실패를 용인하며 혁신적인 시도를 장려하는 문화를 구축한 것이다.
예컨대 AMD는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오픈 포럼과 해커톤(해킹+마라톤·개발 경연 대회)을 정기적으로 열었다. 그 결과 AMD는 전 세계 기술자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 중 하나로 떠올랐고, 기술 개발 속도와 혁신 역량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사회적 책임 실천하는 여성 CEO수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CEO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기업의 성공이 단지 주주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과 연결돼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AMD는 다양한 STEM 교육 지원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또한 그는 여성 리더를 위한 멘토링과 후원 활동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AMD 내부에서 여성 직원들의 리더십과 기술 역량을 키우기 위해 ‘AMD Women’s Forum’이라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멘토링과 네트워킹, 리더십 훈련 기회를 제공해 많은 여성 직원들이 주요 프로젝트를 이끄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는 STEM 분야 여성 진출을 돕기 위해 미국 내 고교와 대학에서 여러 차례 강연을 해왔다. 특히 여성과 소수인종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AMD는 여성 친화적인 기업 문화로 인정받으며, 더 많은 여성 인재들이 기술 산업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수의 혁신적 리더십과 사회적 책임 실천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기업가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그의 활약은 반도체 산업에서 여성 리더의 중요성과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금 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 여성 인재 성장하려면수의 성공은 단순한 한 개인의 업적을 넘어 한국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 한국은 오랜 기간 남성 중심의 기업 문화가 지배적이었고,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실제로 한국 상장사 CEO 중 여성 비율은 미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반면 한국 여성들의 학업 성취도와 수학, 과학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나 수학·과학 올림피아드에서도 한국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활약하고 있다. 예컨대 서울대 입학생 가운데 여성 비율은 거의 절반이고, 이공계 학과에서도 여성 진입이 꾸준히 증가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가 서울대에 재학하던 시절 이공계에서 여성 학우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변화다.
하지만 이처럼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사회로 진출한 이후에는 경력 단절, 유리천장, 조직 내 배제 등으로 인해 리더로 성장하지 못하는 ‘리더십 누수’ 현상이 여전히 뚜렷하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시스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수의 리더십은 한국 기업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그는 단지 이민자 출신의 여성 CEO가 아니라 위기 기업을 세계적 반도체 리더로 탈바꿈시킨 혁신의 상징이자 포용적 조직문화를 설계한 인물이다. AMD 내부에 다양성과 협업을 중시하는 문화를 구축하고, 여성과 소수인종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실제로 미국의 주요 기업들을 보면 제너럴모터스(GM), 씨티그룹, 액센추어 등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들에 여성 리더들이 포진해 있다. 또 이들은 해당 산업의 변화를 주도한다. 한국 사회 역시 이제 여성 리더의 등장을 ‘예외’가 아닌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일 때가 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이버의 최수연 대표와 카카오의 정신아 대표다. 두 사람은 전통적으로 여성 리더가 상대적으로 많은 유통, 호텔, 화장품 산업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첨단기술 산업에서 국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의 CEO에 올랐다. 이는 기술 중심 산업에서도 여성이 리더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특히 두 사람은 각각 변호사, 투자 전문가로 탄탄한 전문성과 글로벌 감각을 겸비하고 있다.
최 대표는 젊고 유연한 리더십으로 네이버의 글로벌 전략을 이끌며 최근 재선임에 성공했고, 정 대표는 카카오벤처스 대표 시절부터 발휘한 안목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플랫폼 혁신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등장은 여성 리더십의 새로운 길을 열며 많은 한국 여성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주고 있다.
수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한국의 수많은 우수한 여학생들은 왜 리사 수가 되지 못하는가?” 이제는 그 질문에 대해 사회 전체가 답을 준비해야 한다. 교육, 채용, 경력 개발, 리더십 훈련, 조직문화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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