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퐁텐의 우화 속으로...나는 허영심 많은 개구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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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파리 샹젤리제에 새롭게 문을 연 몰입형 문화 공간 '우화 몰입 시티' (Cité immersive des Fables)에서는 루이 14세 시대의 우화 작가 장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 1621-1695)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한 체험 전시가 열렸다.

1,000㎡가 넘는 공간 속에서 관람객들은 화려한 무대 연출과 내레이션, 인상적인 설치 작품과 장식, 특수 효과와 최첨단 몰입형 기술, 그리고 다채로운 인터랙티브 게임에 흠뻑 빠져든다. 전시 속 라 퐁텐의 우화는 교육적이면서도 흥미롭게 펼쳐져, 관람객들은 환상적인 세계 속 주인공이 되어 직접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다.

라 퐁텐 우화 체험 전시 포스터 / 사진. © Cité Immersive des Fables

라 퐁텐 우화 체험 전시 포스터 / 사진. © Cité Immersive des Fables

라 퐁텐의 우화 속에 살아있는 교훈

개구리는 소처럼 커질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배를 부풀리다 결국 배가 터져 죽고 만다. 또한, 달리기 경주에서 거북이보다 빠르다고 허세를 부린 토끼는 너무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경주에서 지고 만다. 그뿐만 아니라, 여름 내내 놀고 노래하는 베짱이와 열심히 일해서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는 개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다.

이 우화들은 루이 14세 때 프랑스의 시인이자 우화 작가인 라 퐁텐이 고대 그리스 시대 아이소포스(Aesop)의 이솝 우화와 파이드루스(Phaedrus)의 우화에서 영감을 받은 동물 우화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라 퐁텐 우화와 이솝 우화는 대부분 동물을 주인공으로 인간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면서도 교훈을 전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솝 우화는 짧고 직설적인 간단한 산문체로 교훈이 분명한데 비해 라 퐁텐 우화는 문학적 아름다움과 사회 풍자를 결합한 예술적 우화로 승화 시켜 그의 작품은 프랑스 문학의 고전이자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장 드 라 퐁텐 역, Laurent Stocker / 사진. © Cités Immersives, Fabien Drugeon

장 드 라 퐁텐 역, Laurent Stocker / 사진. © Cités Immersives, Fabien Drugeon

라 퐁텐의 세계로 떠나는 몰입 여행

전시는 네 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여정으로 기발하고 시적인 상상력과 재창조된 등장인물 그리고 현대적으로 다듬어진 대사를 통해 원작의 생동감과 풍자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각 공간에서는 라 퐁텐이 남긴 243편의 우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골라 소개한다. 동물로 분장한 프랑스 유명 배우들이 참여한 4~5분짜리 짧은 영상 우화들을 볼 수 있다. 360° 프로젝션, 빛과 특수효과, 입체 음향(Bon Entendeur), 후각적 체험이 결합된 공간은 치밀한 전시 해설과 함께 다층적인 몰입을 경험하게 한다.

'여우와 까마귀'는 까마귀가 입에 물고 있는 치즈 덩어리를 교활한 여우가 아부와 아첨으로 빼앗아 먹는 이야기로, 자만심에 빠져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려준다. 자만심 많은 까마귀 역할은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프랑스 애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열창한 성악가 악셀 생 시렐(Axelle Saint Cirel)이 맡았다.

여우와 까마귀 / 사진. © Cité Immersive des Fables, David Morganti

여우와 까마귀 / 사진. © Cité Immersive des Fables, David Morganti

(왼쪽부터) 여우역, 샤를르 베를랭(Charles Berling), 까마귀역, 악셀 생 시렐(Axelle Saint Cirel) / 사진. © Cité Immersive des Fables

(왼쪽부터) 여우역, 샤를르 베를랭(Charles Berling), 까마귀역, 악셀 생 시렐(Axelle Saint Cirel) / 사진. © Cité Immersive des Fables

또한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에서 동물들은 하늘의 노여움을 달래고 동물 세상을 구원받기 위해, 가장 큰 죄를 지은 동물을 제물로 바치기로 한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양과 양치기까지 잡아먹은 사자는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제물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되지만, 반대로 힘없는 당나귀는 수도원의 풀을 조금 뜯어 먹었다고 고백하자, 동물들은 너도나도 당나귀가 가장 큰 죄를 지었다며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권력과 힘에 따라 정의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교훈이 담긴 우화이다.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 / 사진. © Cité Immersive des Fables, David Morganti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 / 사진. © Cité Immersive des Fables, David Morganti

(왼쪽부터) 사자역, 알렉상드르 아스티에(Alexandre Astier), 당나귀역, 펠릭스 쥐니에르(Félix Junier) / 사진. © Cité Immersive des Fables

(왼쪽부터) 사자역, 알렉상드르 아스티에(Alexandre Astier), 당나귀역, 펠릭스 쥐니에르(Félix Junier) / 사진. © Cité Immersive des Fables

'개구리와 황소'에서 황소처럼 될 수 있다는 허영심에 결국 배가 터져 죽어버리는 개구리의 모습을, 마리 생필트르(Marie s’Infiltre)는 실감 나게 연기한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셀피를 찍으며, 허영심 많은 인플루언서의 모습으로 이를 표현했다. 개구리는 라 퐁텐에게 셀피가 무엇인지, SNS가 무엇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관객들에게 고전적 우화를 현대적 허영심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개구리와 황소, 개구리 역, Marie S’Infiltre / 사진. © 정연아

개구리와 황소, 개구리 역, Marie S’Infiltre / 사진. © 정연아

[허영심 많은 인플루언서 개구리]

'개와 늑대' 이야기는 자유와 안락함이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 늑대의 눈으로 바라본 개의 따뜻하고 안정된 삶, 그리고 개의 시선으로 깨닫는 늑대의 배고프고 외롭지만 자유로운 삶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왼쪽부터) 개역, 위베르 미옹(Hubert Myon), 늑대역, 아리엘 돔발(Arielle Dombasle) / 사진. © Cités Immersives, Fabien Drugeon

(왼쪽부터) 개역, 위베르 미옹(Hubert Myon), 늑대역, 아리엘 돔발(Arielle Dombasle) / 사진. © Cités Immersives, Fabien Drugeon

관객을 사로잡는 강렬한 피날레, 꿈의 방

전시의 마지막 코스에서는 프로젝션 영상 매핑을 통해 라 퐁텐의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일본 판화, 지하철의 스트리트 아트, 프랑스 18세기 화가 장 바티스트 우드리(Jean-Baptiste Oudry)의 그림 등 다양한 예술 형식이 어우러져 라 퐁텐의 세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관람객은 서서, 의자에 앉아서 혹은 준비된 대형 쿠션에 누워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등을 새롭게 재해석한 내레이션과 함께 360° 프로젝션 영상 속으로 25분간 몰입하게 된다.

라 퐁텐의 우화는 짧지만, 그 속에 담긴 교훈은 매우 크다. ‘나는 현명한 여우일까, 자만심 가득한 토끼일까, 허영심 많은 개구리일까, 아니면 성실히 일하는 개미일까?’ 라 퐁텐이 동물들을 통해 펼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웃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결국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바로 라 퐁텐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대형 쿠션에 누워 Jean-Baptiste Oudry 그림을 관람하는 모습, 360° 프로젝션 꿈의 방 / 사진. © 정연아

대형 쿠션에 누워 Jean-Baptiste Oudry 그림을 관람하는 모습, 360° 프로젝션 꿈의 방 / 사진. © 정연아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Cité Immersive des Fables
5 rue de Berri, Paris 8e
* 영어와 불어 서비스만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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