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 단어로 규정되지 않는 복잡한 인간의 초상...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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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 단어로 규정되지 않는 복잡한 인간의 초상...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

입력 : 2026.06.24 14:46

두산아트센터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 12년 만의 삼연
실존 인물 샤로테 폰 말스도르프의 삶 통해 ‘규정의 폭력’ 물어
1인 35역 모노드라마… 지현준·백석광 더블 캐스팅

초연부터 주연을 맡아 1인 35역 연기를 펼쳐온 배우 지현준이 ‘나는 나의 아내다’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초연부터 주연을 맡아 1인 35역 연기를 펼쳐온 배우 지현준이 ‘나는 나의 아내다’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한 사람을 과연 단 하나의 단어로 규정할 수 있을까.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 중인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는 그 질문 하나를 쥐고 2시간 내내 혼신을 다해 객석을 붙잡는다.

이 작품은 미국 극작가 더그 라이트의 대표작으로,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과 토니상 최고 연극상을 받았다. 2013년 국내 초연과 2014년 재연 이후 12년 만에 삼연으로 돌아왔다. 두산인문극장 2026 ‘신분류학’의 마지막 무대이자, 기존의 분류 기준으로는 쉽게 규정되지 않는 한 인간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극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에서 게이로 살아가던 극작가 더그는 통일 독일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던 친구 존에게서 ‘샤로테 폰 말스도르프’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은 채 나치 시대의 폭압과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감시를 모두 견뎌낸 여장 남자라는 점이 더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샤로테의 삶을 영웅적으로 그린 희곡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베를린을 찾아 인터뷰를 시작하고, 극은 그 만남을 따라 펼쳐진다.

평화로운 골동품 박물관 주인처럼 보이던 샤로테는 극이 흐를수록 양면성을 드러낸다. 두산아트센터

평화로운 골동품 박물관 주인처럼 보이던 샤로테는 극이 흐를수록 양면성을 드러낸다. 두산아트센터

그러나 샤로테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무도 아름답고 흠잡을 데 없이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그 완벽함은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오히려 의심을 안긴다. 그 의심을 자극하듯 극은 이내 그가 동독 비밀경찰(슈타지)에 부역했다는 기록을 전하고, 빈틈없던 서사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한 위장이었는지 적극적인 협력이었는지, 더그가 쌓아 올리려던 영웅 서사는 흔들리고 관객은 어느 쪽도 확신하지 못한 채 인물 앞에 남겨진다.

작품은 한 명의 배우가 35개가 넘는 역할을 홀로 감당하는 1인극이다. 샤로테는 물론 더그와 존, 가족과 주변 인물까지 한 배우가 빠르게 오가며 극을 이끈다. 무대는 별다른 전환이나 소품 없이 하나의 세트에서 진행되고, 배우의 마임과 조명만으로 시대와 공간이 나뉜다.

존과 더그가 타자기로 쓴 편지를 주고받는 도입부 장면에서 배우는 눈앞에 투명한 타자기가 실재하는 듯 대단히 정교한 마임 연기를 펼치며, 공연 초반부터 관객을 단숨에 빨려들게 한다. 그렇게 무대는 1940년대 나치 치하부터 1970년대 동독의 비밀 카바레, 1990년대 통일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넘나든다. 한 인간의 여러 얼굴을 좇는 이야기인 만큼, 한 배우가 모든 인물을 끌어안는 1인극의 형식은 희곡의 내용과 정확히 포개진다.

배우 백석광이 1인 35역을 소화하며 무대를 홀로 이끌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배우 백석광이 1인 35역을 소화하며 무대를 홀로 이끌고 있다. 두산아트센터

그래서 이 작품은 배우 개개인의 연기 결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 이번 삼연은 지현준과 백석광이 무대에 오른다. 지현준이 중심 인물 샤로테를 카리스마 있고 엄숙하게, 묵직한 무게감으로 그려낸다면, 백석광은 보다 친근한 감정 표현으로 관객의 감정이입을 돕는다. 지현준이 어머니의 여자 옷을 처음 입어 보며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각하는 환희의 표정을 그려내는 장면은 이번 공연의 압권이다. 백석광은 골동품상 알프레드를 독특한 표정과 자세로 효과적으로 빚어낸다. 특히 수집품을 바라보며 고통 속에서도 기쁨이 빛나는 말년의 알프레드를 사실적으로 표현해낸다.

극은 끝내 샤로테가 부역자였는지 아닌지, 그 진실을 또렷이 매듭짓지 않는다. 모호함을 남긴 채 막을 내리는 이 선택이야말로 작품의 핵심이다.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고 단숨에 타인을 판단하는 데 익숙해진 시대에, 2시간이 지나고도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샤로테라는 인물은 섣부른 규정을 유보하라는 묵직한 물음을 남긴다.

이번 공연은 초연을 이끈 강량원이 다시 연출을 맡고 김기란이 번역과 드라마터그를 맡았다.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7월 12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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