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에스티로더를 이끌던 레너드 로더 명예회장이 사망했다. 향년 92세.
블룸버그통신 등은 15일(현지시간) 이같이 보도하며 에스티로더는 성명을 내고 로더 명예회장이 전날 가족들 곁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로더는 부모가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설립한 이 회사를 이끌면서 클리니크, 아베다, 맥 코스메틱스, 톰 포드 뷰티, 보비 브라운, 조 말론 런던, 라 메르 등 화장품 브랜드를 출시하거나 인수합병을 주도하며 회사를 성장시켰다. 로더가 1958년 회사에 합류했을 때 연간 매출은 80만달러(약 11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 2009년 회장 자리에서 물러날 때 에스티로더의 매출은 73억달러(약 10조원)에 달했다.
2023년 3월 공개된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서 로더는 순자산 262억달러(약 35조9000억원)로 뉴욕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명으로 꼽혔다.
로더는 특히 2001년 '립스틱 지수'라는 경제지표를 제안하며 더욱 주목받았다. 립스틱 지수는 소비가 위축되는 경제 침체기에 립스틱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로 1929~1933년 사이 미국 대공황 시기에 산업 생산은 절반으로 줄었는데도 화장품 매출이 증가한 현상이 나타나면서 립스틱 효과가 증명됐고, 9·11 테러를 겪은 2001년 가을, 미국의 립스틱 판매는 11% 증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화장품 업체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CNN은 "경기침체 여부는 여성들의 입술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면서 화장용품 업체들의 연간 매출 실적을 발표하기도 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에스티로더의 최고경영자(CEO) 파브리지오 프레다는 "립스틱 지수가 보습 지수(moisturizing index)로 대체됐다"며 "하지만 지수의 개념은 여전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로더는 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2013년 자신이 수집해온 파블로 피카소 등의 입체주의 작품 78점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기증했는데, 당시 미술품들의 가치는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로 추산됐다. 이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역사상 최대 규모 기증이다.
더불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 재단을 설립하는 등 광범위한 자선활동을 벌였다. 그의 첫 번째 아내로 2011년 별세한 에블린은 '핑크리본' 캠페인으로 유명한 유방암 퇴치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