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멀'이 뭐길래…올리브영 신제품이 다 비슷해 보이는 까닭은 [박현주의 코덕의 트렌드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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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6월 올리브영 세일에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고 싶은 신제품이 없었다. 당연히 제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매대는 그 어느 때보다 촘촘했고, 신제품과 캐릭터 콜라보레이션은 넘쳐났다. 문제는 '색'이었다. 쿠션은 전보다 한 호수씩 밝아졌고, 립과 아이섀도우, 블러셔는 하나같이 우유를 탄 듯 뽀얗고 부드러운 저채도였다. 요즘 표현으로는 미지근한, '멀멀'한(자연스럽게 흐릿한 느낌), 슴슴한, 뮤트한 색감.

 뷰티컬리

클리오 프로 아이 팔레트. 출처: 뷰티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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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앤 베러 댄 팔레트. 출처: 뷰티컬리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른바 ‘모카 무스’ 계열의 저채도 트렌드는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핑크와 베이지, 브라운을 한 방울씩 섞은 듯 채도를 덜어낸 컬러는 과하게 꾸미지 않은 듯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는 이유로 빠르게 확산됐다. 립과 블러셔를 넘어, 아이 메이크업과 베이스 제품에까지 비슷한 무드가 이어졌다. 그 결과 브랜드는 달라도 전체적인 첫인상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해 졌다는 느낌이다.

프레시안 밀키모카. 전국적인 품절대란의 주인공

프레시안 밀키모카. 전국적인 품절대란의 주인공

 올리브영

홀리카홀리카 마이페이브 무드 아이팔레트. 출처: 올리브영

이런 트렌드의 배경에는 필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부를 균일하게 보정하고 채도를 자연스럽게 낮춰 주는 필터 환경에서는 강렬한 고채도보다 부드럽고 은은한 저채도 컬러가 더 조화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10대 소비자는 "매장에서 제품을 손등에 발라본 뒤, 거울보다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고 필터를 적용한 화면으로 색감을 먼저 확인한다"고 전했다. 카메라 렌즈 속에서 어떤 분위기로 표현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물론 이런 흐름을 필터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올리브영의 핵심 소비 연령층이 과거보다 훨씬 젊어지면서 10~20대 초반이 선호하는 메이크업 취향이 시장 전반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연스럽고 옅은 색감은 초보자도 부담 없이 사용하기 쉽고, 숏폼 영상에서도 깔끔하고 세련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는 화장품 시장조사를 위해 일본 출장을 다녀왔다. 흥미로웠던 점은 같은 아시아권이고, 숏폼을 소비하며 필터를 사용하는 환경도 비슷하지만 매대의 컬러 풍경은 한국과 사뭇 달랐다는 것이다.

일본 브랜드 루나솔 아이섀도우 팔레트

일본 브랜드 루나솔 아이섀도우 팔레트

일본 브랜드 Addiction 싱글 아이섀도우

일본 브랜드 Addiction 싱글 아이섀도우

한국이 한동안 뽀얗고, 일명 '멀멀'한 저채도 컬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일본 매장에는 여전히 선명한 코랄과 핑크, 시원한 민트, 하늘색 등 다양한 색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하나의 유행이 시장을 장악하기보다 여러 취향과 분위기가 함께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갸루 메이크업부터 하라주쿠 스타일, 서브컬처 기반의 다양한 미감이 공존해 온 시장이다. 이런 문화적 배경 떄문인지 하나의 트렌드가 뜨더라도 선택지는 비교적 폭넓게 유지되는 듯 했다.

반면 한국은 누구보다 퍼스널 컬러에 진심인 나라다. 봄 웜톤과 겨울 쿨톤은 물론, 라이트와 딥까지 세분화해 자신에게 맞는 색을 찾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장은 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하나의 미감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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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크 아이섀도우 팔레트 출처: 뷰티컬리

생각해 보면 한국 뷰티 시장은 원래부터 유행을 함께 만드는 데 익숙했다. 드라마 속 배우가 바른 립스틱 하나가 품절 대란을 만들고, 핫핑크 립과 코럴 립, MLBB, 벽돌 립이 차례로 메이크업의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 하나의 컬러가 화제가 되면 브랜드들이 빠르게 반응하고 소비자도 그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수준이다.

이런 민첩함은 K-뷰티의 강점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원하는 분위기를 빠르게 읽고 제품으로 구현하며 시장 전체로 확산시키는 능력은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티르티르는 다양한 피부 톤을 고려한 쉐이드 전략으로 쿠션 시장에서 해외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넓혔고, 조선미녀 역시 선크림의 성공 이후 다양한 톤을 고려한 틴티드모이스춰라이저 제품군을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그래서 '코덕'의 시선에서는, 색조 메이크업도 하나의 유행을 빠르게 구현하면서도 조금 더 다양한 취향과 얼굴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발전해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올리브영 매대가 그 시대 가장 인기 있는 얼굴만을 보여주는 공간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색을 발견하는 공간이 된다면 그 또한 K-뷰티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저채도 열풍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딸기우유 립이 그랬고, 과즙 메이크업이 그랬으며, MLBB와 벽돌 립이 그랬듯 유행은 늘 순환해 왔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또 다른 컬러가 모두의 파우치를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행이 아무리 빠르게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내 얼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가장 오래 알고 있는 것은 결국 필터가 아니라, 거울 속의 나 자신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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