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간 합병 계획서는 정보공개법상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해당해 외부 노출이 제한돼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과정에서 고용 유지 문제를 두고 사측과 갈등을 빚은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이 합병을 주도한 산업은행에 합병 계획서를 공개하라며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5부(부장판사 이정원)는 아시아나항공 소속 여객기 조종사이자 조종사노조 위원장인 A씨가 산은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17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양쪽 다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됐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는 2021년 7월 산은에 대한항공 모회사인 한진칼이 수립한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통합(PMI) 계획서를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PMI 계획서에 포함된 ‘고용 유지 및 단체 협약의 승계 방안’을 알 권리가 있다는 취지였다. 한진칼이 작성한 PMI 계획서는 같은 해 3월께 산은에 제출돼 6월께 최종 확정됐다.
산은은 PMI 계획서가 정보공개법 9조에 규정된 ‘법인, 단체, 개인 등 민간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지난해 9월 노조는 PMI 계획서 공개를 재차 청구했지만, 산은은 “양사와 관련 계열사의 향후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포함해 유출 시 법인·주주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같은 결정을 내렸다.
노조는 주가에 영향이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PMI 계획서 공개에 따라 근로자가 얻는 이익이 부작용보다 크다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산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인수 이후 통합 과정에 대한 지향점, 통합 실행 계획 등 경영 전략은 타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함이 유리한 사업 활동에 관한 일체의 정보”라며 “근로자의 고용 승계·유지·처우 관련 정보에도 양사의 현재 재무 상황과 지배 구조, 조직 구조 개편 등 민감한 내부 기밀 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쟁점이 된 주가에 미칠 영향에 대해 재판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재무 구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장래 기업 전략을 담고 있어 공개되면 주가 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산은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