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조원.”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에 들어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업장 규모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년간의 노력으로 7월까지 이 중 절반 정도를 정리·재구조화했다. 하지만 부동산 회복 지연으로 추가 부실 발생 가능성도 여전하다. 부동산시장에서 여전히 PF가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이유다.
정부는 기존 PF 사업의 높은 부도 위험을 더는 동시에 부동산 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프로젝트리츠’라는 새로운 카드를 내놨다. 오는 11월께 시행 예정인 프로젝트리츠는 자기자본 비율이 높고 장기적인 운영까지 염두에 둔 개발 구조다. 향후 PF 사업과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 관심이 쏠린다.
◇부실의 상징 된 PF
최근 부동산 시장 위기의 대명사가 된 PF는 부동산펀드, PFV, 리츠(부동산투자회사)와 함께 대표적인 개발 수단으로 꼽힌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까지 투입되는 부동산 개발은 자기자본만으로 할 수 없다. 시행사는 보통 땅값에 대한 계약금(10%) 정도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다. 나머지 땅값은 브리지론(초기 토지비 대출)으로 충당한다. 이후 본PF로 옮겨타면서 브리지론을 갚고, 공사비 등 추가 사업비를 더 빌린다. 적은 돈을 넣어 큰돈을 벌 수 있는 고수익 구조다.
단점도 명확하다. 저자본·고레버리지 구조는 경제 위기 등이 닥쳐 대출 이자가 오르는 상황에서 지극히 취약하다. 수익의 대부분이 나오는 분양대금이 막히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벌어지기 일쑤다. 지난 3년간 대출이자는 오르고, 미분양이 쌓이며 시행사가 줄줄이 무너졌다. 올 들어 시공능력평가 200위 내 중견 건설회사 10여 곳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등을 신청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PF발 부동산 위기’라는 말은 일상이 됐다. 정부 관계자는 “그동안 부동산 개발사업은 자기자본 규제가 없고 한시적으로만 운영되는 PF 형태에 주로 의존했다”며 “저자본-고부채 구조인 PF는 매각·분양만이 목적인 한시적인 수단으로 장기적인 부동산산업 발전을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프로젝트리츠
그렇다고 부동산을 개발하지 않을 순 없다. 꾸준한 주택 공급이 필요하고, 도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프라임 오피스, 데이터 센터 등의 수요는 늘고 있다. 정부가 PF 부실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프로젝트리츠를 도입한 이유다.
프로젝트리츠의 핵심은 자기자본을 늘려 부실화를 방지하는 것이다. 프로젝트리츠는 자기자본의 두 배 이내에서 자금 차입이 가능하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주주총회 특별결의 때 10배까지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33.3% 이상의 자기자본은 들어가야 하는 구조”라며 “PFV보다 재무 건전성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젝트리츠는 PFV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 PFV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개발사업이나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하기 위해 설립하는 명목 회사다. 프로젝트리츠의 AMC처럼 전문 자산관리회사를 통해 사업을 관리한다. 최소 자본금은 50억원 이상이다. 배당 가능 이익의 90% 이상을 현금이나 주식으로 배당해야 하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2022년 말부터 연장된 3년 만기가 도래해 올해 일몰 기한이 연장돼야 한다.
프로젝트리츠는 개발 후 장기적인 운영을 독려한다. 분양 이익에만 초점을 맞춰 상가가 과잉 공급되고, 비전문가인 계약자가 비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세금 혜택도 준다. 기존에는 개발이 완료된 후 임대 사업 등을 하려면 리츠로 갈아타야 했고, 이 과정에서 취득세 등이 발생했다. 하지만 프로젝트리츠로 진행하면 이 단계가 없어진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프로젝트리츠로 책임 운영을 유도하게 되면 개발부터 운영, 금융까지 아우르는 종합부동산 기업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설립과 운영에 장애물을 제거한 것도 눈길을 끈다. 프로젝트리츠는 기존 리츠와 마찬가지로 부동산투자회사법에 근거하지만 설립할 때 PFV처럼 인가 없이 신고만 하면 된다. 개발 단계에서 규제가 많아 사실상 활용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리츠의 단점을 개선한 대목이다. 개발을 마치고 임대 사업을 하게 되는 운영 단계에서 인가를 받으면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동산 펀드는 사모로 운영되고 만기가 있는 한시적인 투자구조여서 장기적인 개발과 운영에는 부적합했다”며 “프로젝트리츠는 장기 운영까지 염두에 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금융회사의 5% 이상 출자가 필요한 PFV와 달리 투자자 요건이 없다. 한 명이 최대 50%까지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리츠와 달리 주식 분산 의무도 없다. 보고의 경우 투자보고서만 작성하면 되고, 공시는 금융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만 하면 된다. 그만큼 규제가 단순화돼 손쉽게 개발할 수 있다. 국토부는 “기존 리츠도 공모하지 않았고, 요건을 갖춘 경우 프로젝트리츠로 전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기 신도시 역세권 등에 공급
추가적인 정책 지원도 뒤따른다. 먼저 올해 하반기부터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역세권과 같은 우량 용지 일부를 프로젝트리츠에 공급한다. 도심 안에 유휴부지를 보유한 토지주가 이를 현물 출자하면 즉시 부과되던 법인세, 양도세 등을 이익 실현 시점까지 이연해주는 방안도 추진한다. 시행자가 개발 후 직접 운영하면 용적률을 상향해주고, 공공기여를 완화해주는 것도 검토 중이다. 국토부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조세 당국과 조율 중”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프로젝트리츠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 기반과 여러 인센티브가 제공되지만 투자 심리 자체가 살아나지 않으면 투자금 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일단 오는 11월부터 도입되는 만큼 성과가 나올지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프로젝트리츠가 PFV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며 “개발 이후 직접 운영하는 사업에 특화돼 도시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