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원자력 발전은 어디에서 막혔을까[주성하의 ‘北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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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한반도 야경. 바다와 북한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한국은 마치 외로운 섬처럼 존재한다. NASA 제공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본 한반도 야경. 바다와 북한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한국은 마치 외로운 섬처럼 존재한다. NASA 제공
대한민국은 단기간에 엄청난 양의 전력을 추가로 생산한다는 과제를 내걸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성공 여부는 전력 공급을 차질 없이 보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100GW(기가와트) 내외의 최대 전력 수요를 감당해 왔는데, 향후 15년 동안 40GW의 능력을 추가로 늘려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 등에 따른 수요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면적 10만㎢에 인구 5160만 명인 나라가 140GW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면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면적 기준으로 따져 봐도, 인구 기준으로 따져 봐도 전 세계에 우리나라만큼 전력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한반도 위쪽엔 참으로 기이하게 대비되는 북한이란 존재가 있습니다.

한국이 세계적인 전력 초부자(슈퍼리치)라면 북한은 거지 중의 상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을 ‘어둠의 나라’라고 하는데, 실제로 북한은 면적 기준으로 보나 인구 기준으로 보나 전력 생산량이 세계에서 최하위권입니다.

지난달 김정은은 새로 조업한 핵물질 생산 공장을 시찰하며 “지난 5년 동안 핵물질 생산 능력은 종전의 2배를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랑했습니다. 또 지난해 12월엔 8700톤급 ‘핵동력 전략 유도탄 잠수함’도 건조하고 있다고 공개했습니다. 핵동력 전략 잠수함엔 고난도 기술이 요구되는 가압경수로(PWR)가 설치됩니다.

풍부한 량의 우라늄도 매장돼 있고 핵물질도 많이 생산한다고 자랑하고 소형 원자로도 있다는데 왜 원자력을 활용해 전기는 생산하지 못할까요.

김정은이 지난달 3일 새로 가동을 시작한 핵물질 생산 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이 지난달 3일 새로 가동을 시작한 핵물질 생산 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 북한의 전력 생산량은

북한의 원자력 발전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북한 전력 생산량은 얼마나 될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북한 발전설비 용량은 8.22GW로 한국(134GW)의 6.1% 수준이라고 합니다. 발전설비 용량과 실제 생산량은 다릅니다. 한국은 지난해 여름 폭염이 절정에 달했을 때 전력 총수요 102GW를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없이 감당했습니다.

2021년 북한 전력 생산량 255억kWh(킬로와트시)는 대략 291만kW(2.91GW)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력을 현재의 30배 이상 생산해야 한국 생산량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통계청 북한 관련 자료가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북한은 통계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정확한 통계를 집계할 능력이 있는지는 차치하고 그나마 공개한 통계도 의도적으로 왜곡하기 일쑤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구 통계입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국 인구의 절반에 맞게 인구를 발표해 왔습니다. 한국 인구가 5160만 명이라고 하니 올해는 2580만 명쯤이라고 발표할 겁니다. 하지만 북한 내부 극비 자료를 입수해 보니 현재 북한 인구는 2000만 명도 되지 않습니다.

북한 통계의 특징은 늘 실제보다 부풀린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통계청 북한 관련 통계 역시 늘 실제보다 부풀려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진짜 전력 생산량은 얼마나 될까요. 기자 역시 알 순 없지만, 기준은 있습니다. 1997년 당시 평양에 살던 기자는 철도국 고위 간부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나라의 전력 생산량이 160만kW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절반 이상을 철도가 쓴다.”

당시는 평양에서 나진까지 열차가 일주일 이상 걸려 도착할 때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열차가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터널이나 골짜기에 하루 넘게 멈춰서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북한 사상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나는 동안 북한 전력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눈에 띄는 대형 발전소가 건설된 것도 아니고 발전 설비는 점점 노후화되고 있습니다.

북한 최대 수력발전소인 수풍발전소는 1944년에 완공된 것이고 최대 화력발전소인 북창화력발전소는 1972년에 건설됐습니다. 대형 발전용 터빈은 중국에서 몰래 들여오는데, 이것도 결코 쉽지 않은 미션입니다.

실례로 2017년 초 북한은 평양화력발전소와 북창화력발전소에 쓸 20만kW 능력의 중고 발전용 터빈 두 대를 서해를 통해 밀수해 들여갔습니다. 김정은은 여기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터빈 한 대는 1년 만에 망가졌습니다.

발전소 노후화뿐 아니라 송배전 시설 노후화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렵게 생산한 전기가 송배전 과정에서 적게는 20%, 많게는 50% 넘게 손실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12월 25일 김정은이 8700톤급 핵추진 잠수함 건조 현장을 시찰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지난해 12월 25일 김정은이 8700톤급 핵추진 잠수함 건조 현장을 시찰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 딴 속셈으로 만든 원자로

현재 북한 전력 사정은 ‘고난의 행군’ 때보단 많이 좋아지긴 했습니다. 한국에 온 탈북민들 증언을 종합해 보면 전력 사정이 고난의 행군 때보다 두 배 정도 좋아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통계청이 추정한 전력 생산량 291만kW(2.91GW)는 얼추 비슷할 것도 같습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북한 전력 생산량을 정확히 밝히려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 발전설비 용량 8.22GW를 100% 가동한다고 해도 한국의 15분의 1 정도 전력밖에 생산하지 못합니다.

북한이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전기 생산입니다. 해마다 신년사에도 늘 전력 생산을 늘리겠다는 결심이 구구절절 나옵니다. 하지만 지난 40년 동안 북한 전력 생산량은 늘 제자리입니다.

북한이 한국의 한울 원자력발전소(9.14GW)나 고리 원전(7.78GW) 정도의 원자력 발전단지를 가질 수만 있다면 전기 걱정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북한도 이를 모르진 않습니다. 북한도 원자력발전소를 갖는 것이 최고의 꿈입니다. 2022년 김일성종합대학 학보에는 “우리의 힘과 기술로 능력이 큰 원자력발전소를 빨리 건설하여야 합니다”라는 김정은 지시가 실려 있습니다.

북한이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입니다. 한국은 1959년 미국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들여왔고 1971년 국내 최초 원전인 고리1호를 착공해 1978년 상업 운전에 들어갔습니다. 북한도 1962년 옛 소련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넘겨받았고, 1980년 영변에 원자로를 건설했습니다.

문제는 북한 원자로는 전기 생산이 아닌 플루토늄 추출 목적이 우선이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우방국인 옛 소련과 중국은 원자로를 운영하는 나라들입니다.

북한이 전기만 생산하겠다는 ‘진심’을 믿어 주었다면 원자로 기술을 넘겨주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원자로 운용 목적이 딴 곳에 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소련과 중국은 북한 원자로 건설을 오히려 견제했습니다.

핵무기 개발에만 매달리지 않았다면 지금 북한은 전기를 풍족하게 쓰고 있을 것입니다. 핵무기와 전기를 바꿔 먹은 셈입니다.

북한 함남 신포에 건설 중이던 경수로는 북한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2003년 12월 공사가 중단됐고 2006년 작업자들이 전부 철수했다. 위성사진을 보면 이 건설장은 기중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등 20여 년 전 작업 중단 상태 그대로다. 구글어스

북한 함남 신포에 건설 중이던 경수로는 북한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면서 2003년 12월 공사가 중단됐고 2006년 작업자들이 전부 철수했다. 위성사진을 보면 이 건설장은 기중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등 20여 년 전 작업 중단 상태 그대로다. 구글어스

● 북한의 원자력 발전은 가능할까

북한은 핵 개발에서 전 세계 유일하게 ‘고삐 풀린 망아지’입니다. 빽빽하게 늘어선 우라늄 고농축 원심분리기를 대놓고 자랑해도 제어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핵무기는 만드는 북한이 원자로는 왜 만들지 못할까요.

북한도 원자로 건설을 위해 나름 애를 쓰고는 있습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 신포에 짓던 경수로 건설이 2006년 완전히 중단된 뒤에도 이를 자체 힘으로 완공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010년엔 조선중앙통신에서 “100% 우리의 원료와 기술에 의거한 경수로가 힘차게 돌아갈 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정신이 먹힐 줄 알았겠죠. 16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의 벽 앞에서 한숨만 쉬고 있을 겁니다.

북한은 어디에서 막혔을까요. 최초의 전력 생산 원자로는 1957년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원자로 구조와 설계도 이미 더 이상 비밀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모든 나라가 원자로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자로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원전 계측제어 계통 기술입니다. 발전소 가동에 필요한 두뇌와 신경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전 선진국들만 보유하던 이 기술을 한국은 2008년에야 두산중공업이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북한이 제일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기술이고 북한 해커들이 가장 훔치고 싶은 것이기도 할 겁니다. 북한 해커들이 한국수력원자력 내부 망을 끊임없이 노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밖에핵분열 반응을 억제하는 붕산수 및 붕소 농도 조절 기술, 붕소 제어봉 생산 기술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원자로 건설에 들어가는 자재들도 쉽게 구할 수 없습니다. 330도 고온 및 대기압 150배를 견뎌야 하는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원자로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의 제작에는 고도의 생산 기술로 만들어 내는 합금들이 사용됩니다.

특히 연료봉에 쓰이는 지르코늄 튜브 합금 소재는 주요 전략물자로 분류돼 국제 거래가 엄격히 통제됩니다. 20년 전만 해도 이 합금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 3개국만 제조했습니다. 한국은 2008년 세계 네 번째로 제조에 성공했고 중국은 2014년에야 막대한 자금을 들여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이런 기술이 북한에 있을 리가 없습니다.

화력 발전용 터빈도 만들지 못해 중국에서 버리려는 중고를 사 오는 북한에 이 모든 난제를 풀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핵분열까지는 성공했지만 이를 통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김정은 “우리의 힘과 기술로 능력이 큰 원자력발전소를 빨리 건설하여야 합니다”라며 재촉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특수로 벌어들인 돈을 원자력발전 연구진에게 넉넉하게 주면서 독촉하면 또 모르겠습니다. 1만 톤급 순양함이나 5000톤급 구축함 두 척을 매년 만들겠다고 하고 몇억 달러나 하는 조기경보통제기를 사 오는 것을 보면, 김정은은 돈이 생기면 과시를 위해 다 써버릴 것 같습니다.

김정은은 해마다 북한 전체의 전력 생산량에 맞먹는 신규 전력 생산 능력을 늘려가는 한국을 보면 얼마나 부럽겠습니까.

한국을 ‘적대적 국가’로 규정하고 등 돌려 앉은 것은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오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랫집이 너무 밝아 눈부시기 때문인지 알 순 없습니다. 가장을 잘못 만나 깜깜한 집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는 인민만 불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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