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무대의상이 23만원 청바지로… AI 에이전트 굴리며 38억 조달[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4 hours ago 5

K팝 패션을 상품으로 만드는 킨도프
투자 전략에 쓰던 수학과 AI 기술… 엑셀도 낯선 맞춤복 산업에 적용
아티스트가 무대에서 입던 옷… 여성복 브랜드로 세계에 선봬
디자인과 제조, 브랜드 운영 자동화… “K패션의 상징적 브랜드로 키울 것”

김선빈 킨도프 대표이사가 패션 제작 공정에 쓰일 로봇의 집게 손을 받은 채 제작의 자동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무대의상을 공급하는 B2B 사업과 그 의상을 상품화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B2C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허진석 기자=jameshur@donga.com

김선빈 킨도프 대표이사가 패션 제작 공정에 쓰일 로봇의 집게 손을 받은 채 제작의 자동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무대의상을 공급하는 B2B 사업과 그 의상을 상품화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B2C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허진석 기자=jameshur@donga.com
서울 동대문구 현대시티아울렛 13층에 있는 킨도프(KYNDOF) 사무실. 컴퓨터 화면에는 인공지능(AI) 에이전트들이 쉬지 않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작업을 수행 중이다. 사람은 없다. 개발자도 없고, 연구자도 없다. 그런데 현재 돌아가고 있는 개발 프로젝트는 브랜드 운영·관리 등 15개. 각각의 AI 에이전트가 서로 승인하고, 수정하고, 피드백을 보내며 스스로 굴러간다. 지난달 29일 사무실에서 만난 김선빈 킨도프 대표(35)는 “전통적인 개발 조직이라면 수십 명이 필요한 규모의 개발이다”고 했다. 킨도프는 블랙핑크와 에스파, 르세라핌, 아이브 등 K팝의 유명 그룹들의 무대 의상을 고품질로 짧은 시간 안에 공급하는 회사다. 무대 의상으로만 끝내지 않고 이를 패션 상품으로도 만들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 무대 의상이 데이터가 되는 순간

킨도프가 풀려는 문제는 단순히 ‘옷을 잘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무대 및 드라마 의상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도전을 하고 있다. K팝 아티스트가 하루에도 몇 차례 의상을 갈아입고 공연과 뮤직비디오를 소화하는 이 시장에서, 정장 한벌 맞추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리는 전통 방식은 애초에 맞지 않는다. 김 대표는 “3일 만에 만들어 달라고 하면서 아이돌 그룹 멤버별로 10벌씩 필요하다는 주문이 들어온다. 일반 맞춤복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빠르기만 해서도 안 된다. 지금의 팬들은 스타일리스트가 시중에 파는 명품을 입혀도 불만을 토로한다. ‘왜 파는 옷을 입혀. 좋은 맞춤복 해줘야지’. 팬덤의 눈높이가 올라갈수록, 의상 제작의 고난도는 높아지고, 납기는 더 짧아진다.

그런데 이 분야를 산업화하려는 공급자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그는 공방 형태로 소규모로 운영되고, 납기가 대기업처럼 정확하게 지켜지지는 않고, 디자인 의도와 다른 옷이 나와도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의류 생산 공정에서 기성복은 자동화가 어느 정도 됐지만, 고급 맞춤복 의상을 만드는 분야에는 아직 자동화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엑셀도 없이 손으로 숫자를 적는 업계다. 시쳇말로 6·25 이후 바뀐 게 없는 그 분야에 킨도프가 뛰어든 것”이라고 했다.

● AI가 5만 땀을 자수 기계에 지시

킨도프의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자수 도안 전산화(디지타이징) AI’를 자동화 공정에 결합했다. 의류에 자수를 놓으려면 바늘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결로 몇만 번을 움직여야 하는지를 지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킨도프의 AI 봇 ‘토미톰’은 예컨대 5만 땀의 작업 지시서를 스스로 만들어 자수 기계로 자동으로 전송한다. 김 대표는 “디자인을 실물처럼 보이게 하는 렌더링 작업이 끝나면, 디지타이징 파일이 자동 생성되고, 자수 기계에 지시가 내려가는데 사람 개입 없이 한번에 처리된다”고 했다.

디자인 단계도 마찬가지다. 기존에는 2D 플랫 드로잉을 스타일리스트에게 보내면, ‘내가 생각한 빨간색이랑 다르다’는 식의 해석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킨도프는 AI를 활용해 소재의 물성이 반영된 3D 렌더링 이미지를 제작 전 단계부터 제공한다. 디자인 의도와 실물의 간극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이다. 아이돌 한 명이 입을 의상 한 벌에 대한 작업 지시서(패턴, 치수, 부자재 위치, 자수 설계 등)를 AI가 자동 생성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나눠서 몇 시간씩 걸렸던 작업이 이제는 순식간에 바로 끝난다. 나아가, 누가 신체 치수를 측정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도록 방식을 표준화하고, 디지털 더미를 제작해 실물 없이도 가상 피팅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 디지털과 물리 세계의 연결

고급 맞춤복 생산이 자동화되려면 의류 제작 공정마다 사진을 찍어 데이터로 쌓는 것이 필요하다. 결과물을 한번에 완벽하게 만들려면 실시간으로 사진을 보고 공정을 감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로고의 위치나 색깔 등이 제대로 됐는지를 AI는 원래 디자인과 공정 사진을 비교해 가며 감독한다. 킨도프는 공정과 공정 사이에 옷감을 옮기고 제작 과정을 촬영하는 물리적 로봇 ‘제임스’를 개발 중이다. 제임스는 발을 갖추지 못했다. 상체와 뇌만 살아 있는 상태다. 그래서 자수 기계와 연동하고 싶으면 사내 연결망을 통해 사람에게 연락해 자수 기계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AI 로봇이 인간에게 협조를 부탁하고, 인간이 그 제안을 받아 물리 세계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로봇에게 알려주는 이 장면은, 킨도프가 얼마나 진지하게 디지털-물리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킨도프는 구글의 AI파운데이션 모델과 오픈 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제임스의 발을 만드는 중이다.

● 대학 시절부터 여러 창업 도전

고려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미국계 헤지펀드에서 수학적 모델로 투자 전략을 만드는 전문가인 퀀트로 일했다. 창업에 대한 열망이 늘 있어서 대학 시절에 이미 영화 추천 엔진 스타트업, 링크트리와 유사한 SNS 바이오링크 서비스를 만들었다 접었던 경험이 있다.

현재 킨도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배우자인 홍다은 씨가 SNS에 올리던 빈티지 의상 사진이 인기를 끌자 김 대표가 현금흐름 예측 등을 조언·지원하면서 자연스럽게 협업이 시작됐고, 2023년 법인을 설립했다.

김 대표는 헤지펀드에서 퀀트로 일한 경험을 킨도프에 이식하고 있다. 패션 시장 데이터를 수집하고, 예측 모형을 돌리고, 그 결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헤지펀드에서 초과 수익을 찾던 방식과 비슷하다. AI 에이전트가 현재 1623개 패션 브랜드의 가격·재고 데이터를 매일 크롤링하고, 시장 포지셔닝을 추적한다. 또 각 브랜드의 추정 매출과 판매량을 자체 예측 모형으로 산출한다. 무신사에서 경쟁 브랜드의 재고가 어떤 속도로 줄어드는지를 관찰해 가격 탄력성을 계산하고, 기온 데이터와 판매 데이터를 결합해 캠페인 최적 시기도 도출한다.

● 블랙핑크 의상 상품화를 넘어

킨도프가 블랙핑크 멤버 리사의 무대 의상으로 만들고 상품화한 의상들. 위쪽 사진은 반바지 반팔 스타일의 상하의를 리사가 입은 모습이고, 아래쪽 사진은 상품화된 청바지. 킨도프 제공

킨도프가 블랙핑크 멤버 리사의 무대 의상으로 만들고 상품화한 의상들. 위쪽 사진은 반바지 반팔 스타일의 상하의를 리사가 입은 모습이고, 아래쪽 사진은 상품화된 청바지. 킨도프 제공
킨도프 비즈니스 모델의 대표적인 성과는 블랙핑크의 무대 의상이다. 블랙핑크 멤버 리사가 공연에서 입었던 찢어진 청바지. 킨도프는 이 의상의 콘셉트를 ‘2000아카이브스’ 브랜드로 전환해 일반 소비자용 데님 팬츠(23만 원)를 출시했다. 무신사에서 올해 1월 여성 데님 팬츠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에스파의 카리나가 공항에서 착용한 킨도프의 ‘긱시크’ 안경도 같은 방식이다. 에스파와의 긴밀한 협업 관계를 바탕으로 발매 전 카리나에게 착용을 제안하고, 착용 노출이 곧 판매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킨도프는 창업 2년 만인 지난해 직원 5명으로 연매출 40억 원을 달성했다. 투자금은 목표했던 12억 원의 두 배가 넘는 26억 원을 유치했다. 팁스 글로벌 트랙 선정으로 연구개발 자금 12억 원이 추가돼 총 38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킨도프는 할리우드를 포함한 미국 엔터 시장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K팝만이 아니라 엔터의 최상류인 할리우드 배우나 가수까지 확보해 글로벌 패션 상품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해외 소비자들은 K팝 스타가 입은 패션을 ‘K패션’으로 인식하는 데 그 자리를 정확하게 채우는 브랜드를 우리가 만들 것”이라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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