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6구에 위치한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서는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외젠 부댕(Eugene Boudin)의 회고전이 열린다. 이 전시는 프랑스 미술계에서 인상주의 풍경화 화가로서 부댕의 위치를 재조명하고, 그의 50년 넘는 작품 세계를 되돌아보는 자리이다.
1824년 노르망디 지방의 옹플뢰르에서 태어난 외젠 부댕은 이웃 도시 르아브르 박물관 큐레이터와의 인연으로 파리 예술가들을 위해 많은 전시를 기획했고, 프랑스와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최초로 작업실 밖에서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한 화가 중 한 명이다. 바닷가에서 하늘과 구름을 그리고 자유롭고 행복한 해변 풍경과 대형 화물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를 즐겨 그려 ‘하늘의 왕’, ‘해양 화가’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그는 “자연에서의 3번의 붓 터치는 실내 작업실에서 이틀 동안 작업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그림은 겉보기에는 편안해 보이지만 엄격한 관찰, 균형 잡힌 구도, 정교한 형태, 그리고 정확한 색채 등 작가의 노력과 자연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미술사 학자 로랑 마뇌브르가 큐레이터를 맡은 이번 전시에는 얀 기옹바르슈(Yann Guyonvarc’h)가 20년간 수집한 개인 소장품 80점,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소장품 및 루브르, 아젱, 르아브르 미술관 대출 작품들이 함께 모여 전시되었다.
전시는 8가지 테마 공간으로 구성되어 노르망디 풍경화를 시작으로 브르타뉴, 프랑스 북부, 보르도,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고 지중해와 베니스의 바다 풍경까지 부댕의 야심찬 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작품 간의 여유 있는 배치와 클래식 배경음악으로 차분하고 몰입감 있는 전시 분위기를 연출했다.
초창기, 액자 제작자에서 화가로
10살의 어린 나이에 부댕은 선박 수리 견습생이 되었다. 이후 인쇄소와 제지, 액자 제작 아뜰리에서 일하게 되면서 예술가들과 접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재능과 그림에 대한 욕망을 느끼게 되었다.
부댕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화 복제 화가로 일하며 네덜란드 회화와 바르비종파의 영향을 받아 해안 풍경과 시골 풍경을 자연에 충실한 사실주의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아카데미즘과 낭만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여서 그의 그림은 혹평받았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게 되지만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끈기 있게 창작 생활을 이어나갔다.
인상주의 대가 모네의 스승
부댕은 자연을 겸손하게 바라보며 변화무쌍한 날씨와 빛을 포착하려 노력했고, 이는 인상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초기에는 모네도 부댕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함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며 점차 그의 즉흥성과 감각에 매료되었다. 또한 네덜란드 화가 용킨트는 밝은 빛과 덧없는 자연의 표현으로 모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모네는 이를 자신의 스타일에 받아들였다. 세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옹플뢰르 근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네는 생을 마감하며 예술가로서의 인생은 모두 부댕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행복과 자유의 해변
1858년 노르망디 바닷가 마을인 도빌은 프랑스 부르주아들의 해변 휴양지로 탈바꿈되었다. 이러한 해변을 즐기는 부유층의 모습은 그림을 그리기에 아주 좋은 주제가 되었다. 부댕은 처음에는 묘사적인 해변 풍경을 그렸지만, 그의 붓 터치는 점점 더 거칠어지고 너무 대담하다는 평가를 받아 그림이 팔리지 않아 당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브르타뉴, 빛과 그림자
1857년, 부댕은 브르타뉴 지방을 발견하고 풍경보다는 그곳 주민들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지역 의식과 전통 의상에 관심을 가지고 수많은 습작을 제작하였다. 1863년, 피니스테르 출신인 마리안과 결혼하여 농민의 생활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엄숙한 풍경을 그리기도 했다.
도빌과 트루빌, 변화무쌍한 하늘
도빌 건너편에 위치한 트루빌은 부댕이 가장 좋아하는 도시였으며, 1860년대부터 매년 여름 그곳에 머물렀다. 그는 그곳에서 화가 친구들과 만나 그림을 그리고, 항구, 조수, 그리고 해양성 기후로 변화하는 하늘에 매료되었다. 그는 또한 농장과 가축을 그리며 빛이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기도 했다.
르아브르, 애증의 도시
부댕은 어린 시절을 항구 도시 르아브르에서 보냈다. 르아브르에서 탄생한 항구의 범선과 원양 여객선을 그린 그의 작품들은 파리에서 그의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정작 고향인 르아브르는 오랫동안 그를 외면했다. 그가 사망한지 8년 후인 1906년 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의 작품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르아브르에서 열렸다.
보르도에서 네덜란드까지
1870년 보불전쟁으로 부댕은 벨기에로 망명하게 되었고, 그곳에 묻힌 병사들의 유해를 찾으러 온 영국 함대를 배경으로 역사화를 그렸다. 수집가와 미술상들의 권유로 부댕은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여행하며 바다를 그렸다. 보르도에서는 매우 섬세한 회색빛으로 물든 항구의 아름다운 풍경을, 베르크에서는 광활한 해변과 하늘 그리고 어부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생발레리쉬르솜의 운하에서는 하늘의 달빛을 화폭에 담았다.
지중해와 베니스, 또 다른 빛
1892년, 부댕은 프랑스 남부 지중해 도시에 정착해 생생하면서도 절제된 색채로 남부의 강렬한 빛을 그렸다. 그는 또한 1892년과 1895년에 베니스를 여행하며 펠릭스 지엠이 바라본 베니스의 낭만적이고 화려한 비전과는 달리, 칙칙하고 안개 낀 분위기의 베니스를 그렸다.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